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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Apr 18. 2023

있으면서 없는 시간

왜 유튜브 볼 시간은 있는데, 책을 읽을 시간은 없을까.

저는 항상 시간이 없습니다. 글을 쓸 시간도, 책을 읽을 시간도, 무언가를 배울 시간도, 취미를 즐길 시간도,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여유롭게 술을 한 잔 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매분 매초를 바쁘게 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웹툰을 볼 시간은 항상 있습니다. 즐겨보는 웹툰이 족히 50개는 넘을 겁니다. 업데이트를 하자마자 찾아보죠. 유튜브를 볼 시간도 물론 있습니다. 다나카도 숏박스도, 너덜트도, 피식 대학도 업데이트에 맞춰 아주 잘 보고 있습니다. 골때녀를 볼 시간도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항상 본방을 사수하죠. 아! 지난주 토요일에는 타짜2, 타짜3을 봤네요. 새벽 3시까지.


그런데, 달리기를 할 시간, 글을 쓸 시간, 운동을 할 시간, 책을 읽을 시간, 여유롭게 차을 한잔 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 시간을 만들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죠. 참 놀랍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왜 내 시간은 있으면서 없을까요?


회사에 갑니다. 일을 하죠. 중간에 커피도 한 잔 하고, 덕수궁 산책도 합니다. 6시에 일을 마치고 집에 옵니다. 어머님 댁에서 아이를 찾아 집에 오면 7시 정도 되죠. 아이를 씻기고 저녁을 먹으면 8시를 넘어 9시 가까이 됩니다. 반주도 한 잔 하죠. 그럼 기분은 조금 좋아지지만 몸이 노곤해지고 만사가 귀찮아지죠. 모든 것을 내일로 미룹니다. 설거지도, 아이 목욕도, 아이 공부도, 내 시간도 모두 뒤로 미루죠.


다 뒤로 미루고 간식을 더 먹거나 안주를 시킵니다. 술도 물론 더 먹고요. 이렇게 위에 음식을 가득 담고 머리엔 걱정과 불안을 가득 담은 채로 잠이 듭니다. 술 때문에 음식과 불안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감각이 조금 둔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아침에 더부룩한 속을 안고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아이의 등교 준비, 출근 준비를 합니다. 항상 피곤하고 개운하고 상쾌한 맛을 없습니다.


아... 그렇네요. 왜 내 시간이 있으면서 없었는지 알았습니다. 에너지를 생성해 내는 활동을 하기보다는 소모적인 활동만 반복했네요. 내 삶을, 내 마음을, 내 몸을 갉아먹는 활동을 지난 몇 달간 계속했던 듯합니다. 물론 이유는 있습니다.


푸른 꿈을 안고 사내벤처에 1년간 도전했습니다. 일을 하는 것이 곧 내 삶인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워라밸이 필요 없는 1년이었죠. 고객은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1년이었습니다. 시간도 자유로웠습니다. 밤을 새워 일할 때도 있지만 가족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을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해야 견딜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돈을 제외하고는 내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일의 완결에 내가 미치는 영향도 미비하다고 느껴지고요. 조직장의 심경을 살피고, 조직장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한 사람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족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아닌 수동적으로 남는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쉽게 도파민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활동을 했습니다. 회사가 끝나면 동료들과 모여 술을 마시며 불평불만을 나눴고, 유튜브 쇼츠에 푹 빠져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이는 옆에서 TV를 보고 난 다나카를 보는 나를 보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운동은 하지 않고... ㅋㅋㅋ 타이밍 좋게도 무릎이 아프고,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핑계가 아주 좋았죠. 어쨌든, 식단은 엉망이고 운동도 하지 않는, 그래서 살은 7kg이나 붙어버리는 총체적 난국이었죠.


어제 전 5시에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고, 아침일기를 썼습니다. 출근하는 아내 아침밥을 차려주었고, 다이어리를 정리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다시 내 평생의 직업을 찾는 과정에 들어섰습니다. 회사 일을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그게 힘들다면 태도라도 배우고 훈련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퇴근 후 아이 옆에 있었습니다. 고작 1시간 30분 정도였습니다. 씻기고, 아이가 퍼즐을 할 동안 책을 조금 읽었고, 공부하는 걸 조금 봐주었고 9시에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저녁은 먹지 않았습니다. 견딜만 하더군요.


오늘은 4시에 일어나 달리기를 했습니다. 아침일기를 쓰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네요. 좋네요. 좋습니다. 작심 3일로 끝날 수 있겠지만, 3일 후 다시 다짐을 하는 한 이 있더라고 일단 시작은 해야겠네요. 인생에 완벽이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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