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온 찐이의 마스크를 벗겼다. 누런 콧물이 코와 입, 볼에 말캉 젤리처럼 붙어있었다. 마스크 안쪽은 더 이상 하얀색이 아니었다. 누렇고 가무잡잡한 색으로 얼룩져있었다. 마스크 겉면은 오래된 스웨터처럼 보푸라기가 올라와 있었다. 어떻게 하면 보푸라기가 올라오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숨쉬기가 불편하거나 간지러워서 마스크를 평소보다 더 많이 만진 듯했다.
찐이는 중증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 특수학교와 통합 초등학교를 놓고 고민하다 통합 초등학교를 선택했다. 통합 초등학교는 우리가 옆에 있는 그 초등학교다. 학생 구성이 비장애인 19명, 장애인 1명, 뭐 이런 식으로 구성된다. 통합교육은 서로의 다름을 인식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배우는 교육이다. 제대로 되냐고? 글쎄.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한 번 해보면 좋겠다.
어쨌든, 아이는 학교에 갔고, 마스크를 썼고, 마스크는 벗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콧물이 나와 간지러워도, 숨쉬기가 힘들어도 그저 마스크 겉면을 만져댈 뿐이었다. 심심하게 앉아 어려운 수업을 들으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찐이가 마스크 겉면을 만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얼마나 답답했을지, 마스크를 얼마나 벗고 싶었을지, 얼마나 불편했으면, 보풀이 올라올 정도로 마스크를 만져댔을지, 집에서는 콧물이나 눈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손이나 휴지로 연신 닦아내는 아이인데, 얼마나 닦고 싶었을지.
아이의 코를 닦아주지 않은, 아니 아이의 행동을 눈여겨 관찰하지 않은, 아니 아이가 그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그저 장애가 있기 때문이라고 편하게 생각해버리는 학교에 대한 섭섭함과 무력감이 들었다.
아이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고, 혼자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기다리는 일이 더하기 빼기를 익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찐이가 20살이 되고, 30살이 되었을 때, 조금은 편안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도움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찐이의 콧물을 닦아주며 자꾸 눈물이 흐른다.
내 눈물을 보고, 자신이 코를 닦던 휴지로 닦아주는 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