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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Dec 16. 2023

다시 시작하는 달리기

2018년 10월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달렸다. 아직 겨울은 아니었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옷을 얇게 입은 탓인지 집에 들어와 보니 허벅지가 빨갛다. 20분 정도 한 2km를 헉헉거리며 달렸다. 그렇게 새벽 달리기를 시작했다.


2018년 10월, 1년 간의 육아휴직을 마친 뒤 복직했다. 참 신기할 정도로 육아휴직 전과 똑같더라. 인정욕구에 매달려 시키는 일을 문제없이 처리하기 위해 애쓰고, 더 좋은 평판과 더 빠른 승진에 점점 매달려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육아휴직을 했는데, 다시 회사로 돌아온 ‘나’는 전과 같았다. 이 상태로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거란 생각에 다다르자 명치끝이 아파왔다. 그 아픔은 심장을 꽉 움켜쥐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내 심장에서 들리는 그 기분 나쁜 웃음을 몰아내기 위해 선택한 건 바로 달리기였다. 달리면 심장이 뛰었다. 심장이 빠르게 뛸수록 심장을 움켜쥔 아픔은 멀어져 갔다. 내 호흡이 가빠질수록 내 귀에 들리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호흡으로 가려졌다.


처음엔 2~3km를 겨우 달리는 수준이었지만 달리다 보니 더 오래, 더 멀리 달릴 수 있었다. 더 오래 더 멀리 달릴수록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달리기는 내 인생에 잔잔한 파문을 주었다. 새벽에 일어나 침대에 더 머무르고 싶다는 유혹을 이겨내고 달리고 들어오면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면 상쾌함을 느꼈다. 발바닥이 지면을 밀고 무릎을 들어 올리고 팔을 앞뒤로 흔들며 공기를 들이마시고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이 좋았다. 순간을 느끼며 지금을 산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을 산다‘는 감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면서 남의 시선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날 사로잡고 있었던 인정욕구가 조금씩 옅어졌다. 날 옥죄던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니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민하고 찾기 시작했다. 달리기에서 시작되었다.


5년이 지난 2023년 10월, 풀코스(42.195km)를 완주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마라톤 풀코스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막연히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은 해봤지만 목표를 세워두고 그것에 매진하진 않았다. 그저 작은 성취감을 위해, 달릴 때 내 호흡을 느끼기 위해, 내 콧속으로 들어오는 상쾌함을 한번 더 맛보려 달렸을 뿐이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풀코스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달리다 보니 더 멀리 더 오래 달리고 싶었다. 10km가 편해졌고, 15km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21km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았고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니 자연스레 풀코스를 신청하고 있었다.


30km를 지나는 순간 잡생각이 사라졌다. 단 하나의 생각만 했다.


‘아… 힘들어 뒤지겠네. 내가 이걸 왜 신청했지?’


35km를 지나면서는 ‘멈출까?’


40km를 지나는데 이런 응원 소리가 들렸다.

“이제부터는 굴러서 가도 들어갑니다!”


이 응원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 싶어. 난 작가가 될 거야. 부동산과 주식을 공부해서 100억 자산가가 되겠어!라는 목표는 누군가에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난 왜 아직까지 글을 이렇게 못 쓰지? 100억은커녕 1억도 못 모았잖아?


00이는 책을 출간했구나… 옆 부서의 누구는 부동산으로 돈을 이렇게 많이 모았네…


조급함에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달릴 때 느끼던 그 두근거림과는 달랐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에 심장의 베이스 음이 더해지며 더 웅장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젠장.


크고 막연한 목표는 대부분 조급함을 불러온다. 최소한 난 그렇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면 되나? 한 번 세우려고 시도해 봤는데… 목표를 세우다 날이 새 버렸다. 어쩌지?


더 생각하지 말고, 일단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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