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Dec 08. 2023

다시 글쓰기 시작한다.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2018년 10월이다. 그전에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자주 했지만 정말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물론 “저의 새해 소망 6번째는 바로 독서입니다!” 정도의 느낌으로 시작했다.


이런 생각으로 처음 집어 든 책은 엠제이 드마코의 <언스크립티드>였다. 어떤 내용이냐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감정은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뭐 어쩌라고?’ 였던 듯하다. 월급쟁이로 살면 안 된다고?, 그럼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는 거야? 너가 성공한 사업은 이미 사양산업이라고! 따위의 말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다음 책은 팀 페이스의 <4시간만 일한다>. 읽고 충격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참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간판을 떼면 난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회사 내에서조차도 그냥 그렇게 시간만 때우다, 퇴근 후에 동료들과 맥주 한잔하러 나갈 생각이나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엔, 난 남들보다 일을 잘하고 열심히 사회생활 하는 전사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은 날이 2018년 10월 18일. 각성을 한 날은 아마 이때일 거다. 책 읽기가 작심삼일 새해 소망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로 바뀌었다. <레버리지>,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와 같은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2019년에도 흐름을 이어 나가, <미라클 모닝>, <드림리스트> 등 자기계발서 위주로 약 50권의 책을 읽었다.


2020년에는 약 70권의 책을 읽었다. 자기계발서는 확연히 줄고 김혜진, 구병모, 정세랑, 김초엽 등 소설이 늘었다. 그리고 <선량한 차별주의자>,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오빠는 오늘도 오케이 : 다운증후군 오빠의 이유 있는 하루> 등 인권과 관련된 사회학책이 읽은 책 리스트에 들어왔다.


2021년에는 약 60권의 책을 읽었고, 2020년의 흐름에 <화폐혁명>, <넥스트 파이낸스>, <메타버스>, <신뢰 이동> 등 경제경영서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2022년에는 약 50권의 책을 읽었다. 여전히 소설과 에세이를 많이 읽었고 브랜딩과 마케팅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2023년은 현재까지 40여 권의 책을 읽었고 <도파민네이션>, <도둑맞은 집중력> 등 유튜브, 인스타, 과식과 폭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가는 나를 자각하게하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책을 이렇게 읽어서, 돈은 많이 벌었느냐? 영향력이 커졌느냐? 셀럽이 되었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난 예전과 같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에 ‘정말?’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업무처리를 하는 것이 당연해?, 고기를 먹는 건 당연해?, 인정받는 건 무조건 좋은 건가?, 미래를 계획하는 건 당연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만 잘 사는 건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질문을 했더니 내면이 단단해지고 회복탄력성이 높아졌다. 함부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고, 애매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이 깊어지고, 시야가 넓어지고, 공감 능력이 높아졌다. 이젠 누구나 우러러보고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2018년 10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브런치에 도전했다. 시작할 당시 내 구독자는 이모, 작은아빠 등 일가친척들이었다. 아내에게 이럴 바엔 그냥 가족 단톡방에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었다. 이에 비하면 이젠 그래도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생겼다.


글을 한 100개 정도 썼을 때까지도 내 글을 읽고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일가친척이 주를 이루었다. 브런치에 글을 쓴 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조회수가 급등했다. 바로 이 글 때문이었다.

<자폐아 펭수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

 https://brunch.co.kr/@mumaster82/111

그리고 몇 달 후, 브런치님께서 황송하게도 내 글을 하나 선택해 주셨다.

<아내가 카톡을 지운다.>

https://brunch.co.kr/@mumaster82/128

조회수 40만을 기록했다. 구독자도 정말 폭발적으로 늘더라. 단숨에 1,000명을 돌파해 버렸다.


2021년까지 일주일에 한 편 이상 꾸준히 글을 썼지만, 2022년에는 그러지 못했다.


사내벤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1년간 스타트  업 대표 흉내를 내 봤는데 나름 진심이었다. 역량이 많이 부족했던 탓에 글쓰기에 에너지와 시간을 투여하기 힘들었다.


2023년, 사내벤처에 실패한 후 다시 원래의 부서로 돌아왔다. 다시 주기적으로 글을 쓰며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면 좋았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내벤처 실패의 충격을 핑계 삼아 쉽게 도파민이 분비되는 활동에 전념했다.


일찍 일어나 달리고, 아침일기를 쓰고, 명상하며, 책을 읽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아침을 차려주며 행복해하던 나는 사라졌다. 겨우겨우 아이를 챙기며 힘들어하고, 회사가 날 알아주지 못한다는 불평불만만 내뱉고, 스트레스를 달달한 탄수화물 덩어리로 풀고, 쉽게 도파민을 얻으려 유튜브 앱을 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날 달라지게 했던 건 역시 책 읽기와 글쓰기였다. 몰입했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찾는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