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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Apr 03. 2020

아내가 카톡을 지운다.

코로나 19가 주는 스트레스와 깨달음

코로나 19로 인한 아내의 마지막 스트레스는 카톡이다. 누군가가 자꾸 아내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내는 참다 참다 그 카톡을 지우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카톡을 번갈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몸속으로 끊임없이 침투한다.


코로나로 아이들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아내는 3달 넘게 아이들 두 명과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내는 힘들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건 역시 '밥'이다.


아내는 유난히 밥 하기를 힘들어한다. 첫째 때문이다. 엄마가 한 음식은 다 맛없어, 이거 건강한 음식이야? 에이 그럼 맛없겠네, 오늘 아침밥이야? 아침에 나 밥 먹는 거 싫어하는 거 몰라?, 이렇게 말하는 딸아이에게 곱게 말이 나갈 리 없다. 그래서 아내는 어제저녁에도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가 아내에게 가장 큰 칭찬을 받았을 때는 아침에 닭봉 구이를 해 놓고 온 날이었다. 아이들이 너무 잘 먹는 다며 오늘처럼 힘이 난 적이 없었단다.



두 번째는 자신의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 이게 치명적일 거다. 하루에 자신에게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단 몇 시간, 아니 몇 분이라도 있어야 한다. 아이와 온종일 함께 있으면 모든 감정이 소모되어 버린다. 이를 충전해야 하는 시간이 없다? 심각한 일이다. 우울감이나 슬픔 따위의 것들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 나에게도 화근이 되어 돌아온다. 별 것 아닌 나의 말이나 행동에 아내는 폭발적으로 반응한다. 이는 아내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된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내가 아이들을 30분~한 시간 정도 맡기로 했다. 아내는 동네를 한 바뀌 돌며 산책을 하거나 마트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한참 부족하지만 이렇게 조금이라도 소모된 감정을 충전한다. 다른 남자를 만나러 나가는 건 아니겠......


코로나 19로 인한 아내의 마지막 스트레스는 카톡이다. 누군가가 자꾸 아내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내는 참다 참다 그 카톡을 지우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카톡을 번갈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몸속으로 끊임없이 침투한다.


찐이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8살이지만 아직 말을 못 하고, 3~5세 정도의 행동 양식을 보인다. 오랜 시간 복지관과 치료실에서 언어, 인지, 운동 등의 치료를 받았다. 이 곳에서 엄마들은 많은 정보를 주고 받고 이야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어느 순간, 엄마들과의 카톡이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다.


뭐... 모든 그룹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서열이 생긴다. 3명만 있어도 암묵적인 서열이 존재하는 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그곳엔 원탑(이하 '철수')이 존재한다. 철수는 발달이 가장 좋다. 비장애 아이들보다는 발달이 늦지만 다른 엄마들이 볼 때, 말도 잘하고, 아프지도 않고, 잘 뛰어다니니 부러울 따름이다.


아내는 철수 엄마가 보내는 카톡이 자꾸 거슬린다. 우리 찐이보다 확연히 발달이 좋다는 것이 짜증의 기저에 깔려 있겠지만 그것만이라고 보기엔 너무 거슬린다.




┃젠장. 충조평판


대부분의 발달장애 아동은 언어치료, 인지치료, 감각통합치료, 특수운동치료 등등 많은 치료를 다닌다. 조금이라도 아이의 발달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면 힘들어도 교육 및 치료 기관을 방문한다. 지금은 코로나로 이 모든 것들이 멈춰있다. 발달장애 아동의 엄마들은 불안하다. 그렇지 않아도 늦은 아이의 발달이 이대로 멈춰버릴 것만 같다.


3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엄마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뚫고 언어치료, 인지치료 등등을 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소독약을 가방에 넣고 아이의 손을 잡고 발달을 촉진시키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저 질환이 있기 때문에 코로나 19가 조금 더 누그러들면 치료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초등학교 수업을 개시하는 것을 일단은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한 우리 집에 철수 엄마의 카톡이 도착했다.

"언니, 어쩌려고 그래. 4월, 5월까지 개학 안 하면 찐이 계속 교육 안 시킬 꺼야? 그럴꺼야?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우리 아이는 지금 치료 나가잖아. 코로나고 뭐고 치료해야지. 지금이 중요한 시기인데... 지금 빨리 발달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힘들잖아.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 철수 봐 내가 정말 뼈 빠지게 치료실 데리고 다니고......"




┃'모른다'는 사실┃


우리 찐이가 지난 세 달간 언어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잃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앞으로 한 달간 인지교육을 더 받지 못하는 것이 아이의 지적 능력 발달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도합 네 달간 아이가 감각통합치료를 받지 못해 발달에 얼마나 저해 요인이 생길지 전혀 모른다. 코로나 19가 더 지속되어 1년 동안 아이가 특수 운동치료를 다니지 못해 전반적인 발달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지금이 정말 폭발적으로 발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성장 발달의 적절한 시기에 적정한 자극을 주어 아이가 드라마틱하게 성장하고 갑자기 말을 하고 인지 능력이 늘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대로 아이가 발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고 아내도 모른다.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른다. 전문가는 알고 있나? 모른다. 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모른다. 과학적으로 뇌의 발달 시기가 어쩌고 저쩌고 해도 모른다. 코로나 19가 안정될 때까지 아이의 교육을 미루기로 한 결정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는 건지, 더 많은 기회를 가지는 것인지 모른다.


아이에게 중요한 타이밍이 언제인지, 무엇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인지 모르기 때문에 매일매일 모든 치료와 교육을 쏟아붓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모르기 때문에 혹시 알지도 모르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찐이의 인생은 찐이가 결정한다.


코로나 19는 나에게도 세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하나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찐이를 나와 다른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찐이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나간다. 세상이 주는 과제를 하나하나 스스로 판단을 내리면서 해결해 나간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부족한 존재가 아니다. 찐이는 우리처럼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며 걷고 뛰고 생각한다. 나와,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존재'일뿐이다.


언어치료를 앞으로 받지 못한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인지교육을 3달이나 못 받았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언어치료를 받아 말을 잘하게 되었다면 그건 언어치료 덕분이 아니라 찐이가 노력했기 때문이다. 인지치료를 받아 아이의 지적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느낀다면 그건 인지치료 덕분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능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아동의 여러 치료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치료는 당연히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치료는 보조 수단일 뿐 주체는 아이라는 거다. 좋은 치료, 비싼 치료가 아이를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스스로 발달하고 성장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당분간 치료를 쉴 수 있어 나쁘지 않다. 아이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깨달았으니 좋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높아졌으니 즐겁다. 내가 뽀뽀하자고 입술을 내밀면 때리지 않고 입술을 쭉 내밀어 다가오니 행복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짜증을 내거나 울던 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달려오니 뿌듯하다. 찐이를 피해 다니던 누나가 찐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많아지니 감동이다. 온 가족이 매주 산책을 나가는 시간이 새롭게 생겨나니 고맙다.



철수 엄마에게,


철수 엄마. 충고는 고마워요. 찐이가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교육과 치료를 잠시 쉬면서 찐이와 우리가 지금 더 행복해졌다는 건 확실히 알겠네요. 정서적으로 안정되니 더 발달하고 지적능력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우리가 서로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앞으로요? 치료하고 교육하겠죠. 그런데 지금처럼 어떻게 해서든 아이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기 위해 아등바등 꾸역꾸역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철수 엄마가 열심히 해서 철수를 사람 만들었다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아이는 부모가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크는 존재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장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요.

잘 지내시고 카톡은 웬만하면 보내지 말아요.

아내가 다 지우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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