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Apr 09. 2020

오윤아 씨, 저도 당당하게 찐이 데리고 나갈게요!

요새 편의점 대세는 편스토랑, 우리 집 대세는 찐이.

요새 주말에 10km씩 뛰기 시작했다. 뛰고 나면 배가 고프다. 초코우유를 하나 먹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간다. 눈에 띄는 음식이 있다. '편스토랑'의 음식이다. 아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호기심이 생겼다.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마장면과 꼬꼬덮밥을 먹어봤다. 맛있다.



순식간에 두 가지 음식을 해치워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아내는 편스토랑에 오윤아가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며 난리다. 인터뷰를 봤는데 자신의 마음을 울렸단다. 실제로 아내의 눈은 촉촉했다.




'왜 내 아이가 이렇게 아플까' 생각하며 힘들었다

아들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 못해서 날 꼬집을 때도 있다. 이후에 나한테 미안해한다. 그 순간에 제어가 안 된다는 걸 아는 거다. 나도 많이 이해를 해주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민이 같은 자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 데리고 나오는 걸 힘들어한다. 주변에 피해를 줄까 봐. 우리 민이를 보면서, 아픔 겪는 엄마들이 당당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이번에 출시가 되면 장애 아동을 돕는데 쓰고 싶다.


짧은 인터뷰를 보는 동안 오윤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래 그 마음 나도 안다.




왜 나지? 응! 왜 나냐고?


처음 우리 찐이가 발달장애라는 것을 알았을 때 머릿속에 커다란 고래가 자리 잡았다. 고래는 헤엄치고 싶은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움직일 공간이 없 꽉 들어차서 여기저기 부딪힌다. 오른쪽 관자놀이와 뒷목을 집중적으로. 그 고래는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왜 나지? 응! 왜 나냐고?'


아이는 4년째 날 때린다. 머리를 잡아당긴다. 머리를 너무 잡아당겨서 대머리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매번 하지 말라고 해도 4년째 '아빠 대머리 만들기 작전'을 성실히 수행 중이다. 정말 성실하게. 내 상태에 따라 가끔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민'이 처럼 우리 찐이도 미안해한다. 잡아당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큰 눈망울을 더 크게 만들며 미안하다 표현한다.


코로나 19가 2년 정도 지속되어 지금처럼 집에 있어야 한다면 난 결국 대머리가 될 것이다. 내 머리카락을 위해서라도 코로나 19는 빨리 잦아들어야 한다. 그러나 오윤아가 말한 대로 코로나 19가 끝난다고 해도 찐이를 선뜻 데리고 나가기는 쉽지 않다. 흠... 이대로 난 대머리가 되어야 하는 운명인가?




왜, 찐이를 데리고 나가기 힘들지?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이의 안전이다. 찐이는 갑자기 찻길로 뛰어든다.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 먹는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떨어질 것만 같다. 실제로 한 번 떨어지기도 했다.


신경 쓰이는 또 다른 하나는 흥분이다. 찐이는 감정 조절이 힘들다. 즐거우면 웃는다. 혼날 때도 웃는다. 세수를 할 때 밖에서 누가 쳐다봐도 미친 듯이 웃는다.


갑자기 소리를 크게 지를 때도 있다. 잠시 산책을 나갔던 아내가 집으로 들어오며 이렇게 말했다.

"2층부터 찐이 목소리가 들려! 그런데 항의 한 번 안 받았네. 우리 정말 좋은 분들과 같은 통로에 사는 거다."


찐이는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표현이 조금 과격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아이에게 나름 '비켜'라는 표현을 해보지만 못 알아듣는다. 그럼 밀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선택을 한다. 몇 번이나 비키라는 의사를 표현했을 찐이에겐 조금 억울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영락없이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못된 아이로 보인다. 여기에 흥분과 소리지르기가 더해지면 모든 아이들 찐이를 피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찐이를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밖에서는 항상 아이 옆에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서 한 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아이를 놀이터에 들여보내 놓고 편하게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 폰을 보며 쉬는 건 내 인생에 없을 듯하다.


찐이와 함께 있으면 (제한적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빛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재 왜 저래? 이상한데...'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왜 저런 애를 데리고 나오는 거야?'
'통제가 안 되면 집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다양한 눈빛을 사람들은 보낸다.


지금은 조금 편해졌지만 그래도 힘들다. 주말에 가족 모두 생필품 구매 산책을 나갈 때면, 아내와 나 그리고 딸아이까지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갈 때는 나와 손을 잡고 뛰어간다. 도착해서는 누나와 춤을 추거나 술래잡기를 한다. 돌아올 때는 엄마가 자상하지만 단호한 설득 스킬을 발휘하여 집까지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 1~2년 전에는 가족이 함께 산책을 나간다는 걸 엄두도 못 냈음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럼에도 힘들긴 힘들다.




누구 탓인가?


오윤아도, 나도, 우리도 끊임없이 했을 질문이다. 내가 찐이를 데리고 집 밖을 나가기 힘든 이유가 난 국가, 제도, 사회, 사람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싸늘한 시선이,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조차 없는 사회가, 우리를 분리해 버리려는 제도가, 우리를 지켜줄 마음이 없는 국가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과 태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나를 행복하게 할 수도 없고, 찐이를 자유롭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해 줄 수도 없다. 그저 내 감정만 갉아먹는 소모적인 생각이었을 뿐이다.


오윤아 씨가 편스토랑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분들이 되게 잘못됐다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가 그만큼 안 나와서 이분들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민이 같은 친구들 만나면 당황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데리고 많이 나와야 되겠다."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한 걸음


항상 시작은 '나'부터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내 손을 먼저 잡아주지 않는다. 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야겠다. 힘들지만 힘을 내서 '함께 밖으로 나가는 근육'을 키워야겠다. 우리 찐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소개하고, 설명하고, 어울리고, 친해지고, 익숙해져야겠다. 이게 바로 사회를 바꾸는 한 걸음이다. 다른 거창한 것이 아니다.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한 걸음부터였다





그 사회의 품격은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사회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한 걸음을 난 찐이와 함께 내딛는다. 생필품 조달 산책에서, 집 앞의 인라인 스케이트장에서, 서울숲 놀이터에서, 키즈카페에서 변화를 이끌어나가야겠다. 이러한 노력이 하나하나 모여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그저 함께 살면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세상, 그저 다를 뿐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찐이 손을 잡고 그 세상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오윤아 씨, 저도 당당하게 찐이 데리고 나갈게요!


(아! 코로나 19 조금 더 잦아들면 나갈게요. 그래도 되죠?) 




최근 푸르메재단이 사옥을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푸르메재단 건물. 경복궁에서 부암동 쪽으로 올라오다 보면 색색의 옷을 입고 깔깔 웃는 세 사람의 웃음과 마주하게 된다.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와 소통하려는 아이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세상으로 나오는 아이, 그들의 당당한 걸음을 응원한다.





https://m.blog.naver.com/purmefoundation2005/221897639602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가 카톡을 지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