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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Apr 25. 2020

ㅋ 지면 어때?

져도 괜찮은 삶에 도전한다.

경쟁의 굴레에 빠져버린 내 인생


난 경쟁의 굴레에 빠져버렸다. 항상 내 옆의 누군가와 경쟁한다. 하다 하다 이젠 '어제의 나'와도 경쟁한다. 승진하기 위해 동료와 경쟁하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친구들과 경쟁했다. 원하지도 않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퇴근 후 독서실에 가서 공부했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은 공부하고 있다는 급훈을 항상 보면서 결의를 다졌다. 이기리라! 지지 않으리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을 한다. 이기면 성취감을 느낀다. 유효기간이 10분짜리도 있고 꽤 긴 건 일주일 정도 가는 것도 있다. 달콤한 노력의 결과다. 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좌절감이나 모멸감을 느낀다. 역시 10분짜리부터 일주일 짜리 까지 다양하다. 성취감은 그렇지 않은데, 모멸감은 화장실에서 똥을 싸거나 지하철에서 가끔 생각나는 것으로 보아 부정적인 감정이 훨씬 오래가는 것 같다.


성취감을 느꼈든 좌절감을 느꼈든 이 감정의 파도가 왔다 간 자리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남는다. '다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과 '다시 좌절감을 느끼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말이다. 그래서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 다시 경쟁을 한다. 그리고 또 노력을 한다.




프로 인생의 시작




평범한 야구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 고교야구나 아마야구에 있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팀이 프로야구라는 - 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 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며, 물론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 세계에 무턱대고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비록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 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프로는 서로 경쟁한다. 그저 평범한 노력을 하고 평범한 결과를 거둔 사람은 프로의 세계에서는 꼴찌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난 언제 프로의 세계로 떠밀린 걸까?


"여러분들은 이제 프로입니다.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니에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합니다. 선배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회사가 원하는 인재로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한 임원이 신입사원인 나와 동기들에게 했던 말이다. 우리를 프로라 했고, 우리는 들떴다. 미친 듯이 열심히 한다면 남들을 다 제치고 빨리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하고도 결정되어 있는 수순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랬다. 옆의 대리를 봐도, 맞은 편의 과장을 봐도 모두 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과장 승진에 떨어진 한 선배는 발표가 나던 날 하루 종일 회사에서 보이지 않았다. 승진 누락 때문이었고,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술자리까지 경쟁했다. 상사의, 선배의 관심과 인정까지 경쟁했다.



초등학교 2학년,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하나 있었다. GI유격대. 그 장난감을 얻기 위한 미션은 시험에서 3개 이하로 틀리는 것이었다. 난 3개를 틀렸고 GI유격대를 얻었다. 그러나 장난감을 사러 가는 동안 엄마의 얼굴 그리 밝지 않았다. 아래층 영환이는 '올백'을 맞았다. 그때 생각했다. 기분이 좋으려면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구나.


중, 고등학교는 등수를 높여야 하는 프로의 세계였다. 5개의 보기 중 정답을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 했다. 대학교는 날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드는 노력을 해야 했다. 회사가 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내 몸과 머리를 꾸며야 했다.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난 옆사람보다 더 매력적이어야만 했다.


둘째 찐이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세계에서도 역시 경쟁이 존재한다. 더 디테일하다. 몇 단어를 말할 수 있는지, 동사를 말할 수 있는지, 문장을 연결할 수 있는지, 수용 언어는 어느 정도인지, 숫자를 아는지, 글자를 읽을 줄 아는지, 쓸 줄 아는지, 소리를 지르지 않는지, 친구를 때리지 않는지, 잘 걷는지, 뛸 수는 있는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프로였다.

찐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프로였다. 그렇게 길러졌고, 그렇게 교육받았다. 사회가 그렇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노력을 강요했다. 각자의 마음속에 노예 감독관을 스스로 배치하게끔 했다.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게 했다. 약간의 성취감과 보람을 먹이로 던져주며 그렇게 그렇게 더 더 더 노력했다. 그리고 내 아이를 그렇게 기르고 있었다.



지는 것이 아니면 이기는 것 밖에 없는 이 지랄 같은 프로의 삶에 우리 아이를 던져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수십억 개의 생이 있다면 가치 있는 삶은 수십억 개 존재한다. 삶에 정답은 없다. 5개의 보기 중 가장 좋은 삶을 고를 필요가 없다. 유전자에 다른 것이 끼어 있다고 해서 열등한 것은 아니다. 열등하기 때문에 사회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 당연하지 않다. 삶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는 거다. 각자가 지닌 가치대로 그냥 사는 거다.


우리 아이에게 죽을 때까지 경쟁하다 죽는 삶을 물려줄 수는 없다.


내가 먼저 이 '경쟁의 굴레'에서 빠져나와야 겠다.



져도 괜찮은 삶에 도전한다.

이제라도 내 '안'에 있는 노예 감독관과 정치 투쟁을 개시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 감정, 감수성, 욕망, 무의식까지 다시 분해하고, 체질하고, 점검하고, 분리하고 조합해야 합니다. 무엇이 나의 것이고, 무엇이 저들의 것인지, 무엇이 나를 자유인으로 만들고, 무엇이 나를 노예로 만드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김누리,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져도 괜찮은 삶을 위한 첫 번째 투쟁은 '잘했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잘했어"라는 말은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음... 너는 내 아랫사람이구나.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관심 없지만 일단 결과가 매우 좋구나. 아주 마음에 들어. 잘했다." 그러니 "잘했어" 보다는 "고맙다", "네 덕분이다", "기쁘다",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잘했다'라는 말만 하지 않아도 난 주변 사람과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워 읽는다. 회사가 날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일이고 내 과제이기 때문에 일을 한다. 자유롭게.


인정욕구, 타인의 시선과 감시에서만 다소 벗어나도 쉽게 자유를 느낄 수 있다. 틀릴까 봐, 실수할 까 봐 가슴 졸이며 일하지 않게 된다. 실수에도 당당하게 내 탓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불안에 떨며 실수를 억지로 가리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게 된다.


두 번째 투쟁은 내가 행복한 순간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갇혀 있다 보면 내 행복의 기준을 타인에게 맞추게 된다. 그저 남들이 그렇다는 대로 돈, 자동차, 학교, 직업, 다니는 회사의 크기, 직급, 아이의 성적에 신경 쓰며 산다. 그렇게 내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산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찾아낸 내 행복의 순간이다.


'매일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이 글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는다.'


행복의 순간이 내일 바뀔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내 행복이니까. 중요한 건 내 행복의 순간이 언제인지를 세상에 질문하지 말자는 거다. 나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잘할 필요 없다. 잘하고 싶을 때 잘하면 된다. 잘하고 싶은데 못했다고? 괜찮다. 언젠가는 잘하게 되겠지. 만약 잘하고 싶은데 못해서 너무 힘들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잘하고 싶은 건지. 남들이 멋지게 보니, 남들보다 잘하고 싶은 건 아닌지 말이다. 정말 잘하고 싶다면 잘하게 되는 데 까지 가는 '과정'이 행복할 거다. 힘들겠지만 행복할 거다. 지금 내가 주저리주저리 정리되지 않은 글을 늦은 밤까지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게는 언제나 호황이다. 좀 더 규모를 넓혀도 좋으련만 그럼 '바빠진다'는 이유로 늘 그 가게를 고수하고 있다.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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