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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y 02. 2020

젓가락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한 때 DJ.DOC의 이 노래가 전국을 강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젓가락질을 제대로 정석으로 해야 한다고 배웠다. '정석' 젓가락질을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젓가락질을 했을 때, 난 기뻤나? 잘 모르겠다. 기억 속 어디에도 그 기쁨을 찾을 수 없다. 엄마에게 물어봤지만, 내 젓가락질에 대한 기억은 없다.



지금은 10살이 넘어버린 딸이 언제 젓가락질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에디슨 젓가락을 처음 사줬더니 잘하더라. 그리고 학교를 가서 아무 문제없이 급식을 먹었다.




찐이의 젓가락질


발달장애가 있는 둘째 찐이도 젓가락질을 배웠다. 첫째와 마찬가지로 에디슨 젓가락을 사줬고 첫째와는 다르게 OO대학병원 작업치료실에 돈을 내고 젓가락질을 배웠다. 찐이는 매일매일 도전했다. 처음에는 젓가락 고리에 손가락을 끼는 것조차 어려웠다.



선생님의 무릎에 앉는다. 왼쪽 그릇에 있는 폼폼을 바라본다. 떨리는 손으로 에디슨 젓가락을 움직여본다. 저걸 오른쪽 그릇으로 옮겨야 한다. 선생님의 큰 손이 젓가락을 든 찐이의 오른손을 감싼다. 함께 하나씩 하나씩 폼폼을 집어 오른쪽 그릇으로 옮긴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찐이는 혼자 반찬을 집을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난 지 5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찐이가 에디슨 젓가락으로 옮겼던 폼폼. 젓가락으로 집어 왼쪽 접시에서 오른쪽 접시로 하나씩 옮겨 담았다. 매주 2회. 1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찐이가 처음

소시지를 집은 날


햇살이 유난히도 밝았다. 베란다 창을 뚫고 햇빛이 길게 거실로 들어왔다. 찐이는 식탁에 앉았다. 오른쪽 대각선에는 에디가 앉아있었다. 에디는 찐이의 젓가락질을 작고 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찐이는 오른손 검지를 에디슨 젓가락 고리에 부드럽게 낀 후, 젓가락 끝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천천히 소시지 볶음으로 젓가락을 가져간다. 검지를 살짝 위로 들어 올려 젓가락 끝을 벌린다. 사이에 소세지를 집어넣는다. 다시 검지를 움직여 단단하게 소시지를 움켜잡았다. 소시지를 천천히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소시지를 집은 에디슨 젓가락 끝에 떨림이 보인다. 천천히 얼굴 앞으로 소시지를 가져와 입속으로 넣었다. 환한 미소로 소시지를 맛본다. 주변은 나와 아내의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찐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젓가락을 두부로 가져간다. 단단하게 그러나 부서지지는 않을 만큼 적당히 검지에 힘을 준다. 찐이의 입안에서 소시지와 두부가 잘게 부서져 섞인다.


솔직히 찐이가 젓가락질을 처음 한 순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발전해 자연스럽게 우리와 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생생히 기억난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폭죽은 검은 하늘에 젓가락으로 소시지를 집고 있는 찐이 얼굴을 그렸다. 아내와 나는 손을 잡고 그 폭죽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너의 기준

나의 기준


가위질에도 힘이 필요하다. 색칠에도 힘이 필요하다. 선을 하나 긋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난 몰랐다. 찐이가 가위질을 하고, 색칠을 하고, 선을 긋는 걸 보기 전에는.


찐이의 젓가락질은 우리의 기준에서 보자면 젓가락질이 아니다. 에디슨 젓가락이 없으면 단 하나의 반찬도 집을 수 없다. 가위질도 항상 자신의 손을 자르진 않을까 노심초사할 정도로 불완전하다. 색칠도 선 긋기도 마찬가지다. 단 한 번도 일직선의 곧은 선을 그은 적이 없다. 손에 힘이 없어 연필을 쥔 손은 항상 흔들거린다. 그럼에도 찐이는 도전했고 성취했다.



지금 찐이는 노래에 도전하고 있다.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를 연습한다. 장난감 기타를 매고 신나게 노래를 따라 한다. 노래라고 할 수 없지만 계속 따라 하고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이 나타나고 하나씩 성취해 나간다. 힘들고 어렵지만 항상 자신의 경계를 허물며 그 누구보다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도 즐겁다. 우리의 세상은 점점 멋지게 변한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먹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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