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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Feb 19. 2020

스마트 폰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몇 번 말했지만 우리 찐이는 8살인데, 말을 잘 못 한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소통하려 노력하다 금세 포기하곤 한다. 그런 찐이가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때가 있다.

찐: 쩌!거!
나: 뭐? 어떤 거 말하는 거니?
찐: 쩌거. 쩌거.
나: 이거?
찐: 아~냐~
나: 이거?
찐: 아↓냐↑


찐이는 손바닥을 펴고 손가락을 세운다. 그리고 손바닥을 터치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손바닥을 훑는 시늉을 한다. 나는 태블릿 pc를 가리키며 말한다.


나: 이거?
찐: 네~~~~~!


아이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미소를 지으며, 모든 걸 얻은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태블릿을 획득(?)한 아이는 능숙하게 기기를 다룬다. 키즈모드 아이콘을 누른다. 키즈모드가 켜지고 어린이 유튜브, 뽀로로, 폴리 앱을 자유자재로 번갈아 가며 동영상을 시청한다. 질린다 싶으면 카메라를 켠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동영상을 찍는 시늉을 한다. 언젠가 보았던 누나가 동영상을 찍는 모습을 흉내 낸다.


우리는 절대 하루 종일 아이에게 스마트 폰을 맡겨 놓지 않는다. 하루에 TV 시청 시간을 포함해서 영상 기기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은 절대 한 시간이 넘지 않는다. 외식을 할 때 조금 보여주지만 외식은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이렇게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다룬다.




국민 10명 중 몇 명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을까?


만 3세 이상 국민 10명 중 9명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성인 보급률이 100%이니 일부 초등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18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정보화진흥원)



통계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10명 중 2명이 '과의존 위험' 상태이다. 모두 예상했다시피 이 수치는 2011년 이후 계속 오르고 있다. 문제는 3세~9세 중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 상태에 빠지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거다. 2016년 17.9%에서 2018년 20.7%로 약 3%가 올랐으며, 이는 전체 평균 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스마트폰 보는 게 나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에게 스마트 폰을 보여줄 때 마다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안 보여주자니 너무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자.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나쁜 건가?


작년 1월 4일, BBC에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아이에게 전자기기 보여주기... 너무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이 기사에서는 전자기기 화면을 보여주는 것 자체 유해하지 않지만, 가족과의 시간이나 운동, 수면 등의 활동을 전자기기가 가져간다면 문제라고 말한다.


같은  31일. BBC에 반대되는 기사가 올라왔다.

'영상 시청, 유아 발달 저해한다'는 연구결과 나와


이 기사는 2세 미만의 아동에게는 절대 영상기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신체능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한다.


'포노 사피엔스'의 저자 최재붕 교수는 스마트폰은 도구가 아니라 간과 쓸개 밑에 있는 하나의 장기와 같다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스마트 폰과 함께 살아나가야 하며, 이를 손에서 놓지 않는 습관을 '악'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루 종일 스마트 폰만 붙들고 앉아 있을 거야!!! 너 이제부터 수능 볼 때까지 스마트 폰 금지야!"


이렇게 대처하는 부모들이 많을 거다. 대처가 제대로 먹혀들어, 스마트 폰을 금지했다면 아이는 시험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거다. 스마트 폰을 금지했다고 꼭 공부를 하는 건 아니지 암기를 철저히 하고 문제 풀이 능력을 향상한다. 그 문제가 답이 정해져 있고 그것도 5개 중 하나를 골라내는 쓸데없는 능력이라는 게 함정 어쨌든 그렇게 공부해서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간다. 취업을 시도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회사가 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소위 잘 나가는 회사에서 선호하는 인재가 아니다.


 '유튜브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킬링 콘텐츠'를 원하는 기업이 '스마트폰은 나쁜 거라 배웠습니다. 유튜브는 회사일을 방해합니다.'라고 생각하는 사원을 뽑을 리 만무하다.



이렇게 보면 아이들이 스마트 폰을 가지고 이것저것 하며 노는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 폰과 친해지도록 적극 장려해야 할 것만 같다.




그렇다면, 우리 찐이는?


찐이와 요새 많이 싸운다. 스마트 폰을 달라는 찐이, TV를 보여달라는 찐이와 사투 중이다. 아이의 영상, 전자기기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아이는 화를 낸다.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른다. 때리고 바닥에서 구른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절대 많이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가 힘든 상황이 가끔 벌어진다.


아내는 지적발달장애 카페와 블로그의 힘을 빌려 보았다. 그곳에서는 해결책으로 영상 노출을 끊어보라고 했다. 해보니 산만함이 줄어들고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몇 달이 지나니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통제가 조금 더 가능해졌단다.


미디어는 순간적으로 이미지가 지나간다. 일반적인 아이, 큰 아이와 같은 경우라면 하루 종일, 매일매일 TV나 스마트 폰을 보는 것이 아니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순간의 이미지를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다른 활동으로 이어진다. 또한 집중력에 심한 손상을 주지도 않는다. 의존도가 높아져 중독이 된다면 문제겠지만.


지적장애 아동의 경우 순간적인 이미지에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단지 자극만 받을 뿐이다. 다른 활동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그 자극에 길들여지면 다른 것에 흥미를 잃는다. 집중력이 줄어들고 쉽게 중독된다. TV를 틀어달라, 스마트 폰을 내놔라, 요청이 많아지고, 떼가 늘고, 고집을 피우게 된다.



지적, 발달장애가 있을 경우,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집중력이 줄고, 지능은 오르지 않으며, 일상생활이 힘든 중독 상황에 쉽게 이르게 될 수 있다.




TV와 스마트 폰이 없는 육아, 가능할까?


찐이에게는 스마트 폰이 또 하나의 장기가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삶을 도와주는 도구로서의 역할만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니 블록체인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새 물결에 대한 적응은 큰 아이의 과제로 넘겨주자. 내 과제로 남겨두자.


주말은 우리 부부에게 TV를 보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육아 중에 BGM처럼 TV를 틀어놓는다. TV를 보며 곁눈질로 아이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밥을 먹을 때, 조용히 잘 먹게 하기 위해 TV를 틀어 놓곤 한다.


최근 찐이는 휴대폰에 급속도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엄마, 아빠, 누나가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달라고 떼를 쓴다. 너무 떼를 쓰기에 몇 번 보여 주었더니 계속 보여 달라고 울고, 구르고, 때린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TV, 마트 폰 없는 육아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휴대폰도 전화가 올 때만 받기로 하고 바구니에 넣어 벽에 걸어놨다. 오전에 1시간, 오후에 1시간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 외의 시간에 난 책을 읽었다. 아이는 스스로 놀잇감을 찾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이것저것을 건드렸다.


뽀로로를 보여달라, 휴대폰을 달라 떼를 쓰고 고집을 피울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미디어를 떨어뜨려 놓으니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보다 내가 힘들었다. 미디어에 중독된 건 아이가 아니라 나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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