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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an 09. 2020

자폐아 펭수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

칼퇴를 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가 웃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칼퇴를 한 너에게 줄 선물이 있다! 짠!


펭수 마카롱. 맛있다. 반을 베어 무니 보기 조금 힘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펭수 마카롱을 내놓는다. 펭수를 좋아하는 날 위해 준비했단다. 그렇다. 난 펭수를 좋아한다. 매일 저녁 펭수 유튜브를 보며 설거지를 한다. 출퇴근 길에 새로운 영상이 없나 검색해 본다. 이제는 펭수 마카롱까지 먹었다.

난 살면서 무언가에 꽂힌 적이 별로 없다. 어떤 캐릭터나 물건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한 달을 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펭수는 조금 달랐다.


'기며니' 작가의 '펭수는 자폐아를 닮았다.'

작년 12월 '기며니' 작가의 브런치 글 '펭수는 자폐아를 닮았다.'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기며니 작가는 펭수의 행동이 자폐아, 발달장애아동과 닮아 있다고 한다. 시선이 없는 눈, 공공장소에서 지르는 소리나 큰 소리로 흥얼거리는 멜로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과격한 행동들이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펭수를 보살피는 EBS 제작진과 발달장애아동의 부모를 대비시킨다.



펭수는 커팅식에서 가위를 집어던지고, 뽀로로 인형을 쳐서 떨어뜨리고, 매니저를 발로 찬다. 이러한 행동은 펭성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펭수가 이러한 행동을 보였을 때 미안해하지 않는다. 당당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펭수는 열 살이라 아직 금전 개념이 없고 회사의 직급체계를 몰라요", "지금은 펭귄어를 하는 거예요!" 기며니 작가는 이러한 제작진 덕분에 사람들은 펭수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런 제작진을 두고 기며니 작가는 '백점 만점에 천점짜리 발달 장애인 활동 보조자의 모습'이라고 했다.


내 아들은 펭수

내 아들 찐이는 발달장애아동이다. 이제 8살이 되었지만 아직 말을 못 한다. 20개 정도의 단어를 알고 있지만 부모가 아니면 알아듣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자폐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자폐성향도 일부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난 펭수가 좋았나 보다.

요사이 관찰한 찐이는 여러 가지 일반적인 아이들과 '다른'특성을 보인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흥분', '과도', '과격'. 세 가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조금씩 다르다.

먼저, 흥분. 그냥 흥분이 아닌 맥락 없는 흥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반적인 아이들이나 어른이 보았을 때 전혀 흥분하지 않을 상황에서 찐이는 흥분을 한다. 가끔 찐이에게 동화를 들려준다. 그러면 찐이는 이야기를 듣는 도중 갑자기 흥분한다. 아기돼지가 나무집을 짓고 있는 대목이나 사자와 생쥐가 만나는 순간에서 크게 웃으며 일어난다. 집중해서 이야기를 잘 들을 때도 있지만 흥분하며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번째로, 과하게 즐겁다. 찐이는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잡기 놀이나 술래잡기를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하게 좋아한다. 놀이를 하는 순간 과하게 즐겁다. 자리에 주저앉으며 크게 웃고, 앞을 보지 않고 마구 달린다. 가끔 누나가 춤을 가르쳐 주고 같이 놀자고 한다. 그때도 찐이는 과하게 즐겁다. 이 즐거움은 놀이를 방해한다.

마지막으로 과격함이다. 찐이는 선천적으로 자신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부족하다. 당연히 힘 조절도 원활하지 못하다. 상대방을 쓰다듬는 행동, 잡는 행동이 아이들을 밀거나 꼬집는 행동으로 비칠 수도 있다. 조금 더 예민한 아이들과 만난다면 아주 작은 과격함도 위협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찐이와 밖으로 나가는 일=전쟁

찐이의 이런 특성 때문에 함께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기며니 작가님의 말처럼 전투를 하러 나가는 군인의 심정으로 나간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잘 피한다. 그리고 제일 주요한'사과' 수류탄을 가슴에 꼭 몇 개 달고 나간다. 이 수류탄을 쓰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시간당 하나 정도는 쓰게 된다.


소리를 지르고 자리에 주저앉는 찐이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찐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밉기도 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1~2년 전만 해도 난 꼭 선글라스를 끼고 나갔다. 시선을 맞았을 때의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놀이터에서 찐이의 앞을 아이들이 가로막는다. 찐이는 말을 하지 못하기에 몸으로 표현한다. 밀거나 머리를 잡아당긴다. 그러면 놀이터 한편에 있는 부모가 달려가고 난 사과 수류탄을 던진다.


격리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는 법

한국사회는 격리에 능하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장애인에 대한 관점도 여성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관점도 그렇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라고 말한다. 불편하면 일단 배제해 버린다. 노 키즈 상영관이 그랬고 난민이 그랬다. 초등학교는 장애아동 통합교육을 하고 있지만 그 시선 따갑기만 하다. 장애아동이 함께 있는 교실은 학생, 학부모, 선생님까지 모두 선호하지 않는다. 왜 굳이 여기에 보내냐는 시선은 쉴 새 없이 장애아동에게 꽂힌다. 그래서 사회는 장애아동을 특수학교로 격리한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찐이와 우리 가족은 사회와 조금씩 격리되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EBS 제작진이였으면 좋겠다. 펭수의 특성에 대해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설명하는 제작진이 부럽다. 우리 찐이가 펭수였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따가운 시선이 아닌 따스한 시선을 받는 펭수였으면 좋겠다. 펭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구독자, 시청자들이 찐이 주변에 가득하면 좋겠다.


사회 탓을 많이 했다. 장애아동을 바라보는 시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탓했다. 정부 탓을 많이 했다.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복지가 형편없다고 탓했고, 그 가족에 대한 지원도 전무하다 불평했다. 항상 여기서 끝났다. 그러나 펭수를 보고, 기며니 작가의 글을 읽고, EBS 제작진을 생각하니 가장 큰 문제는 나에게도 있었다. 나 스스로 우리 찐이를 부끄러워했다. 아니라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숨기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우리 아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사과 수류탄만 던졌다.


기며니 작가님은 EBS 제작진에게 자신의 글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펭수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의 애정을 발달장애인에게도 나눠주는 계기가 되'길 바랬다. 7천 회가 넘게 공유되었으니 분명 제작진에게 닿았을 거다. 난 기며니 작가의 글이 나와 같은 발달장애인 아동의 부모에게 전달되길 빈다. 그리고 펭수 제작진처럼 당당히 우리 아이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근육을 키우자고 말하고 싶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
-게오르크 헤겔-


다들 알다시피 사회는 생각보다 잔인하다. 헤겔의 말처럼 많은 장애 아동 부모가 안쪽 손잡이를 잡아 돌릴 때에만 사회는 격리를 멈출 것이다. 따가운 시선이 아닌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저 함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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