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Dec 23. 2023

다시 시작하는 아침일기

새벽 5시. 옆의 아내와 아이가 깰까, 조용히 침대에서 나온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을 한 잔 마시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볼 일을 마치고 나와 요가 매트를 깐다. 가볍게 10분 정도 스트레칭 후 달리기에 적합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컨디션이 좋으면 8~9km, 그렇지 않으면 4~5km 정도 달린 후 집으로 들어온다. 씻은 후 잠시 명상을 하고 아침일기를 쓴다. 난 이 루틴을 아침일기 루틴이라 부른다.


2019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아침루틴을 어긴 적이 없다……..

면 사람도 아니지. 난 사람인 게 분명하고. 그래도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아침일기 루틴을 지켰다. 2020년은 약 180번 아침일기를 썼고, 2021년에는 170번 아침일기 루틴을 실행했다. 그러나, 2022년부터 내 아침일기 루틴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절반은 지켜졌던 내 아침일기 루틴은 왜 무너지게 되었을까?


번아웃 Burnout

2023년은 번아웃Burnout의 해였다. 노션 AI는 번아웃을 이렇게 설명한다.

번아웃은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업무 부담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침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장기간의 과로와 지침으로 인해 일어나며, 에너지, 동기부여, 집중력 등의 감소와 불안, 우울, 피로 등의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번 아웃은 일의 효율성과 개인의 웰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적절한 휴식과 복구 시간을 가짐으로써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아산병원 홈페이지에는 번아웃이 조금은 무섭게 묘사되어 있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무기력해지는 것


우리는 고생하고 힘들게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아산병원이 말하는 것처럼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극도의 피로감을 느껴야만 번아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번아웃은 서서히 찾아오고, 마치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내 몸에 조금씩 조금씩 지방이 쌓이다 어느 순간 지방간이나 비만임을 자각하는 것처럼 찾아온다. 경미하게 느껴지기도하고, 요새 왜 이리 의욕이 없지? 라는 형태로 느끼기도 한다.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것만이 번아웃이 아니다.


2023년은 참 의욕이 없는 한 해였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으려 애써보았지만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유튜브를 보는 일’ 인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거듭 확인한 해 일지도 모른다.


도둑맞은 집중력

2023년에 나는 집중력을 도둑맞았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각종 OTT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음을, 의존도가 점점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우울해지거나 의욕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유튜브를 본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조금 재미가 없어진다면 어서 집에 가서 유튜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에 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유튜브를 켜고,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10분도 유튜브와 함께한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빼앗아간 내 집중력은 내 집중력을 더 빼앗으려는 활동에 밑거름이 된다. 그 결과 난 집중력이 바닥나 버렸다. 당연히 글쓰기와 같이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들은 뒷전이 되어버린다. 더 쉽게 내 도파민을 분비시켜 줄 멋진 녀석들이 주변에 즐비하기 때문이다.


한창 아침일기 루틴에 집중하던 2019년, 2020년, 2021년은 12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났다. 전날 술을 마셔도 다음 날 5시에 꾸역꾸역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아침루틴을 하던 때는 몰랐지만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쌓여서 2023년에 번아웃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어서 버틴 것이 아니다. 하루에 5시간만 자는 삶을 3년 이상 유지하면 누적된 피로가 어떤 형태로든 발현된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다. 여기에 이런저런 스트레스들이 더해지면서 난 2023년에 번아웃을 겪었다. 


하루에 7시간 이상 자야 우리 몸은 제대로 작동한다. 그런데 하루에 7시간을 자버리면 아침일기 루틴은 힘들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10시 전에 잠들기란 쉽지 않다.


새나라의 어린이

마지막으로 새나라의 어린이가 된 둘째가 내 아침일기 루틴을 막았다. 5시에 일어나면 세상이 적막하다. 8시 20분에만 나가면 회사에 지각하지 않으니,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아침일기를 쓰고 나면 집안일도 조금 할 수 있고, 책도 조금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런데 둘째가 6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5시에 일어나 나가면 아빠 어디 있냐며 깬다. 8시까지 세상모르고 자며 아빠의 아침일기 루틴을 응원하던 녀석이었는데…


어쩌지? 
일단 어떻게든 다시 아침일기를 쓰자.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시작하는 달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