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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un 05. 2019

'상사의 인정'이 없어진 자리를 채운 것

의사결정, 의견개진, 구체적목표 그리고 아님 말고

ㅣ'상사의 인정'이 없어진 자리를 채운 3가지


회사를 다니는 목적이 퇴사라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회사는 절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없다.

난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 없다. 당연히 상사의 인정도 필요 없다.

내 목적에 도움을 주는 경험을 한번 더 하고 미친 듯이 흡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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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상사의 인정'을 회사생활에서 없애버렸다.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그들이 나를 인정한다면 그건 그저 그들의 과제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상사의 인정'을 쓰레기통에 버리자마자 인정이 날아든다. 버릴 것들이 계속 쌓인다.


그들이 정말 날 인정하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나에게 와서 "난 자네를 인정하네!"라고 말한 적은 없으니까. 근데 느껴진다. 일을 하고 있으면 확신이 생긴다. 난 일을 잘하고, 이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아마 빈자리를 채운 이 세 가지 때문이 아닐까 한다.



1. 내가 결정한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예전엔 '결정 회피술'을 항상 발동했다.

'괜히 잘못되면 덤터기야. 위로 던지자!'


그러나 이젠 그냥 결정한다.

'뭐... 문제 생기면 퇴사하지 뭐. 어차피 퇴사가 목표인데 뭐'


영업부서에서 경비 사용 용도 및 용처를 포괄적으로 해석해서 집행해도 되는지를 물어볼 때가 있다. 쉽게 말하면, "이렇게 돈 써도 되는지 아리까리 한데 그냥 쓰면 안 되냐?"이거다.


예전 같으면 간략한 보고서를 만들거나, 구두로라도 팀장에게 보고한다. 깔끔한 보고서는 내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고 '상사의 인정'을 불러오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냥 결정한다. 영향을 대략 계산해 보고 기준에 미달하면 내 판단을 믿고 결정한다.


"네. 그렇게 쓰세요!"

"네? 안돼요!"


이렇게 툭! 말해버린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감사가 나오면 왜 이렇게 썼는지 물어볼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사안이라면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그럼 돈을 쓴 사람은 당연히 이렇게 말할 거다.

"마케팅팀 이 과장이 이렇게 쓰라고 했는데요!"


이 결정으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퇴사다.
'음... 갑자기 목표 달성이군.'

이렇게 생각하며 떠나면 된다.


물론 내 판단이 사업부 존폐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내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손실이 있을 수 있다거나, 내가 잘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면 당연히 위로 던진다. 내가 책임을 진다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렇지 않은 문제까지 형식을 갖춰, 일 잘하는 척을 하며 보고했다.


보고하지 않고 내 판단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는 말은 '상사의 인정'을 못 받는다는 말과 같았다. 이 문제로 인해 상사가 날 '일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할까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나만의 기준을 하나 만들었다.

"결정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 범위가 내 3개월 급여 범위 안에 있다면 내가 판단하고 결정한다."


난 과감히 업무를 처리한다. 쓸데없는 보고서 작성이나, 의사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항상 당당하게 자신감 넘치게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해!" or "하지 마!"라고. 항상 명쾌하고 깔끔한 일처리라고 사람들이 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님 말고.



2.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상사에게 무언가 보고 할 때는 완벽해야 했다. 보고서와 그 안의 분석이나 해결책은 완벽한 것을 가져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쓴 보고서를 누군가 지적하고 수정하면, 그 행위는 나에게 '넌 능력이 없어!', '참... 보고서 못쓰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보고서를 쓸 때 고민의 중심은 항상 '상사의 생각이 무엇일까?', '어떤 분석을 좋아할까?', '어떤 해결방안을 가져가야 마음에 드실까?'였다. 급기야 '이 문구를 좋아할까? 저 문구를 좋아할까?', '공백을 더 넣을까 말까?'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회의는 더욱 그랬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나도 입 다물고 있었다. 그게 편하다. 괜히 이야기했다가 상사와 다른 생각을 말하면 피곤해진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상사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아니할 수 없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 힘을 기를 생각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 스스로 어떤 방향이 회사에 도움이 될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고, 상사는 어떤 방향을 좋아할지, 어떤 해결방안을 좋아할지만을 생각하다 보니 내 의견을 가질 힘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상사의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건 내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눈이 내 얼굴이 이렇게 선명하게 박혀 있는데 왜 난 상사의 눈을 계속 빌리려고 했던 건지 의문이다. 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핵심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내가 판단한 내용이 상사의 지시와 다를 경우 분명하게 의견을 말한다. 받아들이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 의견을 가지고 이를 분명하게 말하는 경험을 계속 쌓아 나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도 이렇게 의견을 말하는 것이 상사와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라면 붙들어 매라. 해보니 아니더라. 태도가 불량하지 않다면, 싸우자고 달려들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상사는 '저 친구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군'이라고 인식한다.


내 말보다, 사축의 가면을 쓰고 회사를 다니며, 지속적으로 딴짓을 해 매년 10억을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딴짓을 하는지 몰라 우수 사원으로 표창까지 준, 그리고 결국 딴짓이 걸려 퇴사한 일본 사람의 말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의견을 말함으로써 당신의 처지가 나빠진다면 그 상사는 위험하다는 뜻이므로 불건전한 상사 곁에서 떠나야 한다.

고다마 아유무, 『가면 사축』



3. 도전적이고 구체적인 목표


리 회사는 매년 초 자신의 성과 목표와 추진계획을 작성한다. 다 당연한 이야기만 써 놓는다. 휴직 하기 전인 2017년 내 목표도 당연한 소리였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뭘 한다는 건지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2017년>

(성과목표) 사업계획 및 중점 추진과제 실행을 지원하고, 사업계획 수립의 Quality를 제고한다.

(추진계획) 월별 예산 집행 현황 분석 / 예산 사용의 타당성 및 적정성 분석 / 사업계획 추진계획의 실행 지원 및 사업계획 수립 지원



어떻게는 하나도 없다. 2017년에 내가 이 목표를 달성했을까? 당연히 달성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목표였으니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상사가 내 능력이 부족하고, 내가 일을 못한다 여길까 두려웠던 거다.


2019년은 다르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웠다. 어떻게를 집어넣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달성할 수밖에 없게끔 세웠다.


<2019년>

(성과목표) 주요 경쟁사의 시장 DATA를 정리 및 분석하고 자동화하여 마케팅 전략 수립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통계 및 분석자료를 적시에 제공한다.

(추진계획) 2019.4월까지 OO센터와 연계하여 자동화 계획을 수립한다. / 5월까지 제도별, 시점별, 자산별 분석이 용이하도록 Raw data를 구성한다. / 6월까지 통계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화한다. / 7월까지 보정작업을 진행하고 하반기 사업계획 수립에 관련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런 목표를 10개 써냈다. 예전엔 당연하고 어떻게가 빠진 목표를 5개 겨우 세워서 상신했었다.


이 목표를 보고 팀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목표를 상신하고 며칠 뒤 팀장은 내 뒤로 와서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 일 많지? 힘들지 않아?
나: 아닙니다. 저 일 많지 않습니다.
팀장님: 아니야. 이번에 일을 많이 받았어. 괜찮지?
나: 팀장님 저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는 거 아시잖아요. 일 더 주셔도 됩니다.
팀장님: 아니야.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일 많이 받았어. 그런데도 아주 잘 처리하고 있어.


난 8시 57분까지 출근하고 6시 1분에 퇴근한다. 다음 화에서 이야기하겠지만, 하루에 4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마트하게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짧은 시간에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아님 말고.




'아님 말고'


'상사의 인정'이 사라지자 '아님 말고'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에겐 마법 같은 말이다.


난 회사에서 이런 사람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나 아이디어가 많다.
그가 보고하면 모든 것이 명쾌해진다.
차기 조직장 감이다. 난 그럴 생각이 없지만
기획 능력이 탁월하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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