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멈가 Jan 18. 2024

글 쓰는 사람은 눈이 3개입니다

제3의 눈



글을 쓰다 보면 눈이 하나 더 생긴다. 그 눈은 얼굴이 아닌 가슴에 달려있다. 그 눈은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을 다르게 본다. 망막은 없지만, 망막으로는 볼 수 없는 삶의 희로애락을 보여준다.


나는 이 눈을, 제3의 눈이라 부르고 싶다.






글 쓰는 사람들은 ‘전혀 특별한 것 없는 소재’를 가지고도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짓는다. 그런 글을 보면, 어떻게 그걸 보고 이런 생각을 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딱 그러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그는 당시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연탄을 주제로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글을 썼다. 어떻게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연탄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도 누구는 아무 생각이 없고, 누구는 스토리를 떠 올린다. 전자는 두 눈으로만 본 것이고, 후자는 제3의 눈으로 함께 본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 보건대, 윤도현 시인은 누구보다 훌륭한 제3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그는 대단한 문학인이지만, 그렇다고 꼭 그처럼 유명한 시인이나 작가여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블로그만 보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이 제3의 눈으로 일상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꾸준히 글을 쓰기로 했다면, 좋든 싫든 제3의 눈을 떠야 한다. 그저 빛의 굴절에 따라 망막에 맺히는 상 그 이상의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글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몇 개의 글은 거침없이 썼을지라도 머지않아 글감이 고갈되기 마련이다. 매일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매일 글감을 포착하려면 제3의 눈을 부릅떠야 한다.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결코 거창한 것은 아니다. 사실 제3의 눈은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조용히 그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제3의 눈은 기꺼이 그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오랫동안 감은 눈을 떴을 땐 곧바로 제 기능을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밝은 빛에 완전히 적응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가 보인다. 연탄재에서 온정을 느낀다. 마침내 모든 순간이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는 빼기의 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