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생일, 만년필을 선물받았다. 사각 사각거리며 진하게 써지는 글씨를 보면, 이쁘진 않지만,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원목 가구나, 가죽 제품을 볼 때도 그렇다. 특유의 촉감과 냄새 그리고 묵직함.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다.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게 이런 클래식한 취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20대 때에는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자존감을 올려주는 건 달력을 빽빽하게 메운 약속들이었다. 늘 시선이 외부로 향하다 보니, 정작 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런 의미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명확해진다. 취향이 뾰족해지는 것이다.
한편, 내가 깎아버린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읽고 싶은 책만 보게 되었다. 관심 없는 일은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시선이 내면을 향하게 된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취향이 지나치게 뾰족해진 나머지, 나를 둘러싸던 ‘면’을 잃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깎아내린 단면 중에는 분명 중요한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선택과 포기는 뗄 수 없는 관계라지만, 과연 그 선택이 합리적이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취향은 연필이다. 그래서 조심히 깎아야 한다. 스케치할지, 세밀화를 그릴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뾰족하게 깎아서는 안 된다. 깎는다는 표현보다 다듬는다는 말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