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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멈가 Jul 15. 2024

빈부격차보다 무서운 건,




은퇴를 앞둔 병원장님의 대화를 엿들었다. 한 직원이 '시간이 생기면 뭘 하고 싶으시냐' 물었다. 원장님은 짧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답을 유추했다.

'평생 병원에 묶여 있었으니, 여행이려나?'



하지만 원장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글쎄.. 책이나 잔뜩 읽고 싶네."



아니, 평생을 읽고 연구만 한 양반이,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독서를 꼽다니. 역시 범인은 아니다.



그를 보면 동경심과 열등감을 함께 느낀다. 그동안 그가 쌓은 지식은 얼마나 될지, 그리고 앞으로 쌓아갈 지식은 또 얼마나 될지. 그걸 생각하면 나는 조금 초조해진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를 고려해도 마찬가지이다. 그와 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지식 격차가 있다.



소수 계층이 정보를 독점했던 시대는 끝난 지 오래지만, 지식은 여전히 일부 사람들만이 제대로 흡수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지식의 바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식의 강줄기'에 가깝다.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다.



그런 지식의 흐름도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듯하다.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 무색하게도, 쌓는 사람은 계속 쌓아가고, 소비하는 사람은 계속 소비한다. 그 결과 지식의 격차가 생긴다.



나는 운이 좋아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과 마주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병원장님과 더불어, 최연소로 서울대 교수가 된 S교수님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대개 탐욕스럽다. 돈이 아니라 지식에 탐욕스럽다. 습관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지식을 흡수한다.



지식의 격차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돈이라면, 한 번 들어온 지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고, 마구 나눠줘도 그 양은 줄지 않는다. 따라서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빈부격차가 아니라, 지식의 격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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