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 대신, 평소에 꾹꾹 참아온 말을 속 시원하게 해주면 어떨까요?
혹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어떤 사실을 명쾌하게 정리해 주면 어떨까요?
전자의 상황에서는 고구마로 막혔던 목이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쾌감을, 후자에선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찾아 맞추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입니다. 놀랍게도 글쓰기가 딱 그러합니다. 오로지 나의 손으로 막혔던 속을 뚫어내고 퍼즐을 완성하니 그 감정은 배가 됩니다.
이런 글쓰기의 힘을 깨달은 것이 저뿐만은 아닌가 봅니다. 오늘날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서점에 가면 글쓰기 책이 꼭 한 권씩은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글쓰기 모임과 강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처음 배우고자 했던 3년 전, 서점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책을 찾던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AI가 각종 글을 다 써주는 시대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환멸, 또 시간 낭비했다는 후회, 그리고 발전적인 삶에 대한 애착.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감정입니다. 저는 글쓰기 붐이 현대인들의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도파민 디톡스'라는 챌린지가 유행입니다. 도파민은 디지털 시대가 본격 도래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주로 SNS 중독에 관한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데, 이러한 쾌락 중심 생활을 중단하거나 줄이는 것이 바로 도파민 디톡스입니다. 글쓰기가 그 대체제로써 우리 삶에 들어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글쓰기가 과연 그 자극적인 콘텐츠들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여기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따분해 보이기만 한 글쓰기가 의외로 도파민과 친분이 깊다는 것이죠.
창작 활동으로 인해,
집중과 몰입으로 인해,
목표 달성으로 인해,
타인의 관심과 인정으로 인해.
이렇게 글쓰기는 여러 방면으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합니다. 각종 매체에서 도파민의 안 좋은 부분만 다루다 보니, 우리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도파민은 동기부여와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녀석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 즐거움은 '계속하는 힘'으로 선순환되니, 알고 보면 반드시 필요한 물질입니다.
다만 만사가 그렇듯 적당해야 이롭습니다. 도파민이 과할 경우엔 쾌락 중독에 빠지기 쉽고, 부족할 경우엔 우울증이나 파킨병, ADHD 등의 정신질환에 취약해집니다. 글쓰기를 권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필요한 만큼의 도파민을 잔잔하게 충전시켜 줍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특효인 처방 약입니다.
글쓰기는 마치 콩국수 같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삼삼한 도파민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싫었지만, 지금은 푹 빠졌습니다. 더울 때 콩국수가 생각나듯이, 머리가 복잡해지면 글을 쓰게 됩니다.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맛으로 여름의 한 부분이 된 콩국수처럼, 글쓰기가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힘든 계절 속에서도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콩국수를 떠올리니 도파민이 싹 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