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가슴 속에 유치한 꿈 하나씩은 품고 살아간다.
어렸을 때,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나는 한 가지 놀이를 만들었다. 일명 모험가 놀이. 규칙은 딱 하나이다. 새로운 길로, 가본 적 없던 곳을 가기. 나는 내가 만든 그 놀이를 가장 좋아했다.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거나 담을 넘는 등 길이 아닌 곳을 들쑤시고 다녔기 때문에 내 손은 항상 새까맣게 되었다. 그대로 학원에 가면 선생님은 기겁하면서 얼른 손부터 닦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더러워진 손이 자랑스러웠다. 그때부터 모험가를 동경했나 보다.
"지구를 탐험하기엔 너무 늦게 태어났고, 우주를 탐험하기엔 너무 빨리 태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공감하면서도 슬펐다. 물론 진짜로 목숨을 걸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할 기회가 온다면 망설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동경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는지도.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진다고 한다. 잃을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꼭 어디를 탐험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일상에서 사소한 결정 하나를 내리더라도 그게 내 커리어에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가족에게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 투자 대비 효율은 얼마나 되는지 오만 가지를 다 따지게 된다. 소심한 선택의 결과는 당연히 소심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땐 그런 어른들의 모습이 나약하고 비겁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새 나도 그런 98%의 평범한 어른의 범주에 들어와 버렸다.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속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어렸을 땐 누구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던가.
사람은(특히 남자는) 누구나 가슴 속에 유치한 꿈 하나씩은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그게 모험가인 것이다. 지금도 종종, 아니 꽤 자주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언젠간 떠날 거야. 그때가 되면 맘껏 방랑할 수 있도록 날 보내줘."
스스로 생각해도 이게 웬 망발인가 싶긴 하다. 남편이라면 마땅히 가족을 평생 보살펴줘야 하지 않던가. 매번 똑같은 내 대사에, 아내 역시 매번 똑같은 대답으로 응수한다.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거야"
나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그 말을 들으면 왠지 안심이 된다. 죽을 때까지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그렇다. 이렇게 또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늘었다. 그래서 더욱 신중히 결정해야 하고, 그래서 더 겁이 많아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의 모험가 놀이는 이제 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