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이 불안할 땐 일찍 일어납니다.

by 멈가


자주 불안을 느낀다. 뭉뚱그려 말해 불안이지, 초조함, 답답함, 열등감 등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갑자기 엄습해 온다기보다는 늘 곁을 맴도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탓일까, 이젠 밉지도 않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불안이라는 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불안은 대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다. 그 말인즉슨, 녀석에게 귀 기울이면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불안도 있다. 뭐든 심하면 병이다.



떨쳐 버릴 수 없다면, 함께 살아야 한다. 함께 살려면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내 생각에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아주 단순하거나, 아주 대범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하루빨리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어찌저찌 어른이 됐다. 이제는 녀석과 함께하는 방법을 알 것도 같다.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내 경우에는, 삶이 불안할 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고요한 시간에, 나를 불안케 하는 원인을 찾아 메운다.



석사 과정 땐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남들은 한창 돈 버는 시기에 꿈을 찾겠다며 퇴사하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알다시피 꿈을 좇는 사람은 처음엔 배고프기 마련이다. 수입이 없으니 불안했다. 제때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학력 좋은 연구실 선후배에게 묘한 열등감마저 들었다. 게다가 취업 생각을 하면 그저 답답했다.



그래도 남들보다 잘하는 게 하나 있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나오는 일이다. 그래서 일찍 일어났다. 7시에 연구실에 도착해,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개인적인 공부를 했다. 그 과정에서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자격증 두 개를 취득했고 어학 점수를 올려, 결과적으로 취업에도 도움이 됐다. 나는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다른 사람과의 간극을 줄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이다. 내겐 옳은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다. 그땐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불안이 해소될까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소가 됐다.



이런 내 생각은 김미경 강사의 말에서 더 확신을 얻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사는 게 너무 겁나거나 무서우면 일찍 일어난다고 한다. 대출받아 차린 피아노 학원이 잘 안될 때, 코로나로 강사 수입이 0원이 됐을 때도 그렇게 했다. 결과는 지금의 그녀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불안감이란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고조된다. 성과를 떠나, 행동하는 것만으로 불안은 상당 부분 제어가 된다. 무엇보다, 침대 안에선 그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아무도 내게 똑바로 살라고 잔소리하지 않는다. 말해봤자 감정만 상할 뿐,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땐 내면의 잔소리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가다간 앞날이 뻔하다는 불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게 함께 사는 방법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