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하기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두렵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목소리가 작아서 그렇다. 억지로 크게 말하면 목에 힘이 들어가 어색하다. 그 모든 걱정이 말하기를 주저하게 한다. 그래서 점점 입을 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과묵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과묵한 것과 말을 못 하는 건 다르다는 사실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곤 한다. 언젠간 이 내성적인 성향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얼마 전 스피치 과정에 등록했다. 석 달짜리 코스인데, 무려 백만 원이나 하는 프로그램이다. 부담스러운 가격에 한 달을 망설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비싼 가격 덕분에 등록할 수 있었다. 그 가격이라면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다른 수강생들을 봤을 땐 조금 놀랐다. 다들 나처럼 사람들 앞에서는 말 못 하는, 조금은 찐따같은 사람들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찐따는 나뿐이었다. 그중엔 전문 스피치 강사도 있었고, 미국 박사 학위에 미스 코리아급 외모를 지닌 여성분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스피치는 이미 훌륭했다. 나는 괜히 더 주눅이 들었다. 어렸을 때 구몬 선생님이 오는 날이면 불안해 스트레스받곤 했는데, 그때처럼 스피치 수업이 있는 날이면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싼 강의를 선택하길 잘했다. 나는 돈이 아까워서 도망도 못 가고, 매번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스피치의 구성, 스토리텔링 그리고 좋은 스피치의 특징 등을 배웠다. 이제 마지막 컨퍼런스 만이 남았다. 그동안 각자 수차례 수정한 원고를 무대 위에 서서 발표해야 한다. 두려운 일을 사서 하려니 죽을 맛이지만, 속으로 이야기한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자. 끝까지만 하자."
스피치 과정을 모두 마쳤을 때,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타고난 성향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마 수십 번, 수백 번은 해야 두려움을 이겨낼지도 모른다. 이번 스피치는 그 첫걸음일 뿐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멋진 첫걸음이 아닌가. 그냥 끝까지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