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개인주의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MT 이튿날 아침 7시쯤, 나는 최대한 정중히 인사하고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얼떨결에 내 인사를 받은 타 부서 직원 둘(아마 병리과였던 것 같다)은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흉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시급해.'
입사 후 처음으로 다른 부서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다. 주말을 빼앗긴 것에 대해 불만은 있었지만, 첫날은 그런대로 잘 버텼다. 하지만 술자리가 무르익을수록 앉아있기 힘들어졌다. 그저 술자리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밤 11시쯤 되자, 드디어 인사과 직원이 일어나 말했다.
"이제 슬슬 자리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2차 합시다."
'미치겠네.'
그날 밤, 나는 기가 몽땅 빨려버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아침에 이곳에서 탈출하겠다고. 그렇게 불편한 술자리를 마치고, 불편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대로 작전은 성공했다. 밤새 술 마신 탓에, 다들 뻗어있었다. 덕분에 나는 크게 눈치 보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엠티촌을 벗어나자, 곧 북한강이 보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아침 햇살, 진한 녹색의 산 그리고 좋은 음악. 드디어 평화를 되찾았다. 가방이 조금 무거웠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한잔 마시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래. 이게 내 방식이지.'
북한강을 따라 걷다 보니, 3년 전 친한 친구들과 캠핑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30살이 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소리다. 몸만 조금 늙었지, 여전히 포켓몬스터(특히 이상해씨)를 좋아하고, '초능력을 가지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하는데 말이다.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신껏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20대 때에는 혹여나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싫은 자리도 늘 억지로 참여했다. 또 약속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는데, 그때는 그 소속감과 친구가 많다는 느낌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나를 위한 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려와 달리, 사람들은 이런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신 있고 깔끔한 내 인간관계를 좋게 봐주었다.
덜 눈치 보고, 내 방식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30대가 되고 가장 좋은 점'이다. 덕분에 필요한 만큼의 운동을 하고, 책도 더 많이 읽고, 지금처럼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서야 맘껏, 개인주의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