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거들 뿐.
계산 착오가 있었다. 한 번에 끝낼 일을 두 번에 마쳤다.
이때다 싶었는지, 친한 동료가 와서 깐족댄다.
"어휴..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니깐."
나는 곧바로 받아친다.
"아닌데? 몸이 좋아서 머리가 고생을 안 하는 건데?"
AM 8:00 연구실
아침 일찍부터 팀장님이 나를 호출하셨다.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OO팀에 인원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또 인원 부족. 이제는 감흥도 없다. 모든 팀이 인원 부족으로 허덕인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회사는 절대로 인원을 ‘충분히’ 채용하지 않는다. 인건비가 비싼 건 알겠지만, 일하는 우리는 죽을 맛이다.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고.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는 2년 전에도 그 팀으로 파견 간 적이 있다.
"쌤이 그쪽 업무를 잘 아니까, 다녀왔으면 합니다."
뉘예 뉘예. 아무렴요.
팀장님은 늘 미안한 듯이 정중히 권유하지만, 마음을 돌리는 일은 거의 없다. 이미 그쪽 팀과도 얘기가 끝났을 확률 100%.
"네 알겠습니다. 언제부터 가면 되나요?"
파견이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팀보다 근무 환경이 좋고 몸도 덜 힘들다. 문제는 다시 그 쪽 업무를 배우고 적응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파견 첫날, 업무 시스템을 배우기로 했다.
"프로그램이 조금 바뀌었어요. 일단은 제가 보여줄게요."
앉아서 그가 하는 걸 지켜봤다. 안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새 시스템이 달라졌다고 하니 걱정이 컸다.
"이제 쌤이 해야 해요."
잠깐 보여주고 투입하라니? 아직 머리에서는 업무의 순서조차 정리가 안 되었는데..
자신없는 내 반응에 그가 한 마디 보탰다.
"처음에는 옆에서 봐 줄게요. 침착하게만 해요."
그렇게 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손을 움직였다.
아니 그런데?
머리는 돌아가질 않는데,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2년 전 했던 일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 해보니 그제야 머리가 따라온다.
왼손은 거들 뿐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