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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멈가 Nov 02. 2023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아직도 덜 흔들린 걸까?


5년 만이다. 공항 가는 길이 설렐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필이면 출근시간과 겹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지옥철이었다. 게다가 학회 일정으로 가는 터라, 짐이 한가득이었다. 본의 아니게 만원 지하철에서 민폐를 끼치는 기분마저 들었다.


공항은 그새 많이 바뀐 듯했다. 셀프로 체크인을 하고 수화물까지 부친다. 스마트패스라는 앱을 사용하니 수속도 빨라졌다. 새로운 문물에 적당히 얼탔고, 적당히 능숙하게 수속을 마쳤다. 명품이나 면세 쇼핑에는 관심이 없어, 곧바로 탑승장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 그저 탑승 시간만 기다렸다.


비행기에 타면 늘 이륙하기도 전에 잠들고는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리에 앉고 잠시 후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어떤 과학적인 이유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기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 졸음이 온다던가.. 나만 그런 걸까?


오랜만이야, 기내식아.


잠시 후 들려오는 굉음에 잠에서 깼다. 이륙할 때 나는 엔진 소음이었다.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진동도 커졌다. 대한항공이라고 딱히 덜 흔들리는 것도 아닌가 보다. 이 소음과 진동을 느낄 때면 늘 심장박동 수가 올라간다. 조금 겁이 나면서도 설렌다.


전율이라고 하면 오바일까? 아무튼 굉음을 내며 이륙할 땐, 항상 이상꼬롬한 느낌이 든다.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을 잠시 떠난다는 사실을. 그리고 곧 다시 밟을 땅은 낯선 곳이라는 사실을.


한때는 배낭 하나 메고 방방곡곡 돌아다녔다. 그때 내 꿈을 결정했다. 모험가가 되겠다고. 지구가 이렇게 넓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는데 어찌 한국이라는 작은 땅에만 살다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는 절대 눈을 감지 못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뭐, 결과적으론 나이가 들며 남들처럼 현실에 순응했다. 평범한 직장에, 평범한 월급 그리고 평범한 삶. 부모님은 안도했을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로 ‘나’라는 우주를 여행한다며 애써 위안하지만, 인디아나 존스나 베어 그릴스처럼 온몸으로 부딪치며 모험하고 싶었던 내게, 그게 잘 될 리가 없다.


불안정할 땐 안정을 찾고 싶고, 안정되면 모험하고 싶은 이 맘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데, 아직도 덜 흔들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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