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못 될지언정, 패잔병은 되기 싫으니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과거엔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스스로에게도, 사회생활에도.
특히 불편한 자리에서는 거의 벙어리가 되었다. 군대에서 한 선임은 내 관물대에 ‘말 안 걸면 절대 말 안 함’이라고 써놓은 종이를 붙여 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바가 있어도 잘 얻지 못했다. 쟁취하기보다는 늘 체념하거나 회피를 선택했다.
바뀌기로 한 계기는 단순했다.
역경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고,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군인 시절이 인생의 역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기를 버티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다.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사람은 하나같이 영웅 같았다. 포기를 모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목표를 쟁취한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야 함을 깨달았다. 영웅은 못 될지언정, 패잔병의 삶을 살기는 싫었으니까.
그 무렵에 하나의 슬로건을 만들었다.
「원하는 것을 쟁취하라」
그 문구를 되뇌며 스스로를 세뇌했다. 피하고 싶은 순간마다 떠올렸다.
자취를 시작했을 땐, 그 슬로건을 방 여기저기에 붙어 놓았다. 거울, 화장실, 현관문 등. 가장 잘 보이는 위치마다 붙였다. 심지어는 팔목에 작은 타투로도 새겼다. 부끄러우니까 남들이 모르게 아랍어로.
그래서 지금은 진취적인 남자가 되었을까?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지금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패잔병의 자아가 수시로 고개를 든다. 그러고는 속삭인다.
그냥 도망가라고. 포기하면 편하다고.
그럼 다른 한 켠에서 또 하나의 자아가 눈을 번뜩이며 말한다. 원하는 것을 쟁취하라고.
수년의 노력으로 생긴 영웅의 자아이다. 이젠 쉽게 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