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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멈가 Dec 26. 2023

NPC or Player

친절이라는 미덕 하나 빼면 우리는 NPC

© alisonpang, 출처 Unsplash


 출근길에 자주 들리는 편의점이 있다. 주로 커피를 사는데, 편의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같다.


 우선 가게에 들어서면 익숙한 루트에 따라 냉동고로 향한다. 거기서 아이스 컵을 하나 집어 들고는 카운터로 가서 말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삑-!


“네 됐어요.”


 그걸로 끝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만큼의 대화. 알바생은 계산을 마치고 다시 앉아 휴대폰을 본다. 딱히 불편함은 없지만, 내심 손님한테 인사도 안 하는 직원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직원의 문제라기보단,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는 듯하다. 대부분 그런 것을 보면 말이다. 더 이상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꽤 많이 해본 나로서는 그러한 ‘친절의 종말’을 누구보다 체감한다. 10여 년 전, 처음 아르바이트할 때 점장님이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친절이었다. 따로 교육시간을 내어 인사만 가르칠 정도로 손님맞이를 중요시했다.


 그런데 10년 후, 다시 일하게 된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많이 달랐다. 대부분의 안내 멘트는 이미 자동 음성으로 대체되었으며, 업무 방침에도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사장님은 재고 관리와 정산에 대해서만 교육할 뿐 손님 응대에 대해서는 딱히 얘기가 없으셨다. 그저 주어진 일만 잘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면, 문득 NPC(Non-Player Character)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NPC는 게임 속 상인처럼 의도적으로 설계된 존재를 말한다. 그들은 프로그램된 대로 같은 말만 반복할 뿐, 정해진 장소를 이탈하거나 돌발행동을 하지 않는다.


 친절이라는 미덕을 하나 뺐을 뿐인데, 우리는 그렇게 NPC가 되어간다.


 어쩌면 필요한 만큼만 감정을 소모하며 일하는 것이 실용적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 NPC가 아니라 플레이어(Player)라는 사실을.




 오늘도 커피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나이 지긋한 한 아저씨가 계산하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며 알바생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요즘 편의점에서는 분명 불필요한 인사말이다.


 그렇다면 인사를 받은 알바생은 어땠을까?


 일 년 넘게 봤지만, 그 직원이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아, 저 사람도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불필요한 인사를 건넨  아저씨야말로 진정한 플레이어였다.


 반면, 그 직원에게는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상품을 구입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내가 더 NPC 같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NPC와 Player는 겨우 한 끗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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