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동아리, 왜 그렇게 목숨을 걸어?

일본의 취미 문화 -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채우는 동아리 활동

by 무밍


2021년, 코로나가 세상을 휩쓰는 와중에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콩쿨 중 하나인 쇼팽 피아노 콩쿨이 열렸다. 각국에서 모여든 젊은 연주자들이 나름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가운데, 일본에서 온 두 명의 참가자가 눈길을 끌었다. 한 명은 공대 졸업생, 한 명은 현역 의대생. 평생 음악만을 전공하고 직업으로 삼는 이들 중 최정상이 경쟁하는 무대에서, 전혀 다른 전공이 당당히 실력을 겨루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보다 몇년 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는 일본의 공무원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전직 육상 선수를 제치고 여성부 우승을 기록한 이는 일본의 직장인이었다. 내가 아는 일본인 지인들도 대상은 각자 다르지만 어릴 적부터 꾸준히 해온 활동에 진심이다. 유도, 검도, 수영, 피아노, 바이올린, 혹은 애니메이션 덕질…. 덕후 기질은 일본의 학교 동아리 문화에서 길러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 처음 대학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은 그 해의 봄을 잊을 수 없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캠퍼스를 둘러보던 찰나, 여기저기에서 동아리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며 같이 해보자고 말을 걸었다. 그 전단지 위에도 새하얀 벚꽃잎이 사뿐히 내려앉았던 4월이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었기에 동아리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취미라 생각했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몇몇 동아리의 문을 두드렸다. 어릴 적부터 수영을 조금 했으니, 학교 수영장도 이용할 겸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운동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동아리 회장을 찾아갔다.

“저, 어릴 적부터 수영을 자주 했는데요. 얼마나 자주 활동하나요?”

“하루에 서너시간이요. 여름에 대회가 있어서요, 거기 나가는 게 목표에요.”

“….하루에 그만큼이요?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 개인 체력 단련 시간은 별도고요, 주말도 훈련이 있고 방학 중에는 합숙을 해요.”

체대도 아닌, 평범한 학부생들이 하루에 서너시간씩 운동한다고? 운동선수가 목표인가?


한국에서도 대학을 다녔지만 그 어떤 운동부에서도 이 정도로 훈련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서 빠르게 그만두고 다른 활동을 찾아본 끝에, 역시 어릴 적 잠깐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 떠올랐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악보를 보면 적당한 곡은 칠 수 있으니 취미로는 적당하겠다 싶었다. 피아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합숙도, 단체 연습도 없을테니.


다행히 동아리에서는 역대 첫 외국인이었던 나를 환영해 주었고, 덕분에 여러 가지 일도 분담하며 즐겁게 활동했다. 우리끼리 연주회도 열고, 곡 이야기도 나누고,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펜션으로 합숙도 갔다.

연주회 때마다 엄청난 클래식 대곡을 소화해내는 그들 틈에서 나 혼자 연습에 긴 시간이 필요 없는 간단한 뉴에이지를 쳤다. 다들 좋은 곡이라며 악보를 복사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내심 얼마나 연습을 해야 저런 곡을 칠 수 있는건가 싶었다. 분명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치는거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저런 곡을 치지.


tempImageSLNjts.heic 일본 피아노 동아리에서의 연주회. 릴레이로 피아노 치는 기획이었다 ㅋㅋㅋㅋ


동아리 친구들은 끝없이 피아노를 소재로 재미있는 기획을 떠올렸다. 머릿속에 음악밖에 없는 게 틀림없었다. 어느 날, 그렇게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레슨받고 어려운 곡을 칠 정도라면 전공해서 음대에 진학하는 게 낫지 않얐느냐, 왜 음악과 상관없는 학과에 진학했는지 물었더니 다들 오히려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난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싶진 않았거든. 본업이랑 취미는 별개잖아.”



전공을 하지 않을 거면 피아노에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그만둔 나와 친구들, 그리고 비슷한 생각으로 ‘예체능은 초등까지만’이라는 암묵적인 한국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10대를 온전히 문제집을 푸는 데 매달리는 사이 일본 친구들은 공부와 취미는 별개라며 어릴 적 부터 공부 이외의 활동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 후에 만난 일본 친구들 역시 예외없이, 학창 시절부터 무언가에 매진한 이력이 있었다. 오케스트라, 배구, 농구, 야구, 럭비… 심지어 럭비를 하던 친구는 후배가 경기 도중 다쳐서 사망하는 사고까지 겪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의 부모는 학교를 찾아와, 우발적인 사고였으니 이 일로 럭비부가 해체되지는 않기를 바란다며 허리를 숙였다고 한다. 그 정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정도로 일본의 학교와 선생님들(동아리 코치는 보통 학교 교사로, 이들 역시 어릴 적부터 취미에 매진한 이들이다)은 동아리 활동에 진심이었다.


지인들은 일본의 동아리 활동이야말로 집단에서 함께하는 법을 배우며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집단을 개인보다 우선하는 문화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인생의 기반을 다지는 10대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특정 활동에 몰입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경험은 훗날 크나큰 자산이 된다. 그런 경험들이 비전공자임에도 쇼팽 콩쿨에 도전하고, 직장인이면서 동시에 프로 운동 선수와 어깨를 겨루는 밑바탕이 되는 게 아닐까.


본업과 취미의 양립, 그리고 두 가지 모두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인간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한국에서 자랄 우리 아이들의 10대는 어떤 방식으로 채워질지, 일본 친구들의 삶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본업과 취미를 함께 품고 사는 삶. 어쩌면 삶을 지탱하는 힘은, 그런 균형감각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그깟’ 동아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삶이 흔들릴 때 마음을 붙잡아주는 작고 단단한 버팀목일지도 모른다. 아이들도 그런 삶의 축을 하나쯤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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