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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채움 Apr 01. 2020

취직을 했습니다. 취준생에게 할 말이 생겼습니다.

들어줄래,   Listen?

2017년 상반기 낙방, 2018년 3월 홍보대행사 입사 후 3개월 만에 퇴사를 거쳐 OTA에 입사했다.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는 외국계 스타트업. 완벽하다곤 할 수 없지만 스타트업 회사의 역동성과 외국계 기업의 수평적인 문화, 합리적인 개인주의로 아주 만족하며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준 할 때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취준 할 때부터 알았다면 좋았을 나의 깨달음들이, 지금 취준을 하고 있는 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바람에 기록을 시작해보려 한다.

(2019년 3월에 쓴 글입니다) 


#1 취뽀는 운, 또 운이다.


취직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속으로는 작은 질투심과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그래 운 좋아서 좋겠다. 내 운은 대체 언제 오냐…’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고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눈 앞에서 보면, 정말 그러하다. 조직에서 사람이 필요한 순간들은 간헐적으로 존재하고, 시기에 맞춰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지원을 하면 그것이 곧 채용이다. 회사와 지원자의 니즈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쉽지 않고, 그것이 지원자 개별의 능력과는 관계가 없다고 느껴진다. 비용 문제로 신입을 뽑는데 오버스펙의 경력자가 지원을 해서 채용을 못하는 상황이나, 경력직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신입이 지원했을 때 등의 상황이 그러하다. 이걸 취준 때 좀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원자가 너무 완벽해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도 공채에서 떨어졌을 때 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타벅스 화장실에서 엉엉 울던 그날의 흑역사가 없었을지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우린 서로 인연이 아니었던 거다.


#2 취준 때는 취뽀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취뽀 = 헬의 시작이다.


취뽀만 하면 돈 걱정 없이 맛있는 거 잔뜩 먹고, 매일 쇼핑하는 줄 알았다. 현실은 회사 식대 7000원을 넘는 음식 앞에 벌벌 떨고, 코트를 사지 못해 후드 집업으로 연명 중이다. 돈벌이를 시작하면서 이제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고 내 밥벌이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았다. 예전에는 상사에게 아부 떨고, 이 줄 저줄 따져대며 정치질을 하고, 상사가 성희롱을 해도 가만히 있는 것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그런 행동들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경멸했던 이들도 그저 생계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며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오라. 그리고 취준을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헬에 입성하기 전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정신수련의 단계쯤으로 여기면 그 시간들을 좀 더 기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이 시절이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3 특히 마케터는 취뽀 후에도 공부, 공부 또 공부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은 아부, 정치질, 인맥 아닌 능력으로 성공하는 .(저런   능력이 되서 어쩔  없다....) 그러다 보니 레퍼런스 삼아 각종 브랜드의 마케팅 활동, 다른 마케터들의 인사이트 등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일요일마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모습은 분명 같은 자리에 앉아 자소서를 쓰던 취준생 때는 계획에 없던 그림이다. 내가 원해서 하고 있는 것이지만, 마케터로서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는 인풋이 있어야 한다는 , 취준생  미처 알지 못했다.

어차피 취뽀 후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면, 취준일 때부터 업계 지식을 계속해서 공부해오면 어떨까? 홍보대행사로 인턴으로 근무하던 때, 매일 아침 온라인 마케팅 관련 각종 자료를 정리해 고객사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때부터 취준, 그리고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업계 동향을 파악해오고 있다. 그것들은 면접에서 다른 지원자들 사이에서 날 돋보이게 해 주었다. 취뽀를 위해,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위해 ‘더피알, 아이보스, 퍼블리(유료)’ 등의 사이트를 꾸준히 살펴보기를 권장한다. 도움이 될 만한 사이트는 아래 포스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홀로 일하는 온라인 마케터의 마케팅 레퍼런스 https://brunch.co.kr/@mumsil/5


#4 영어 못해도 외국계 기업 갈 수 있다. 그렇지만 가면 나만 손해다.


정량적 영어 스펙은 토익 955점, 오픽 AL. 영어를 못한다고 할 수 없지만, 문제는 결코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영어실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내게 외국계 기업은 ‘가면 좋을 곳이지만 나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외국계 기업에 일하고 있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외국계 기업은 영어를 꼭 유창하게 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이다. 기업 내에는 수많은 직무가 있고, 본사와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부서도 있기 때문이다. 또 나처럼 영어를 자주 쓰는 직무여도 어찌어찌하다 보면 말은 통한다.

하지만 업무 상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가정해보자. 본사에서 한국인의 시각에서 말도 안 되는 마케팅 캠페인을 하라고 한다. 이것이 효율이 좋지 않은 마케팅 캠페인이라는 것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1부터 100까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결론은? 그지 깽깽이인걸 알면서도 해야 한다.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면 업무에서 느낄 답답함과 절망감은 감수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입사하라.


#5 놀라울 정도로 불합리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정해진 출근 일자/시간 외에도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 법이 명시하는 사항들을 지키지 않는 것 등은 회사가 가진 불합리함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되고, 회식에 자주 빠졌다는 이유로 얼마 전 아이 아빠가 된 사람을 대놓고 프로젝트에서 빼버린다는 등, 회사는 상식을 지키는 곳이라기보다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곳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국계 기업이라 우리 회사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친구들과 얘기를 해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다양한 일들이 숨 쉬는 것보다 더 자주,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왜 어른들이 직장생활이 더럽고 치사한 것이라고 말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6 스타트업 신입으로 들어가는 것. 들어가긴 쉬울 지라도 회사생활은 대기업보다 어려울 수 있다.

취준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더 하라면 할 수도 있었지만 그 짓을 1년 이상 하고 나니 나의 젊음을 무의미한 일에 그만 소모하고 싶었다. 눈을 낮추고 싶었지만 대기업/중견기업의 마케팅은 힘들고, 중소기업은 마케터를 뽑지 않았다. 뽑더라도 그들의 업무는 영업일 확률이 높았다. 결국 신입 마케터를 받아주는 곳은 스타트업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와 같은 과정으로 스타트업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스탑!

스타트업 마케터가 되면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동료들과 토론하고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는 마케터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스타트업들은 극히 소수의 성공한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 마케터는 회사에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그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혼자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루아침에 직무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어쩌면 그다음 날 회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5번에서 말한 것처럼 회사는 비합리함의 총체이다. 스타트업은 비합리한 일이 더욱 쉽게,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에 지원한다면 최소한의 규모를 갖춘 곳, 대표의 생각이 올바른 곳, 비전이 있는 곳 등을 찾아 지원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것들보다 중요한 것! 자신이 스타트업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그것을 충족해줄 수 있는 곳을 찾아나가기를.





취준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우울한 시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앞이 안보이던 막막한 시기였다. 정말 낮은 확률의 빛에 기대 암흑을 뚫고 나가고 있을 취준생들이여, 모두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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