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기록_29살
“네모난 건물 안, 네모난 책상 위에서 네모난 모니터를 보고 네모난 책을 디자인하고 있네.”
29살, 졸업 후 4년여 동안 쉼 없이 일해서인지 일상에 대한 권태감이 무척 심해졌다. 마치 네모난 일상에 갇힌 느낌이었다. 이러한 권태감은 잦은 조직개편으로 분위기가 수시로 바뀌던 회사 상황과도 맞물려 과부하에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29란 숫자가 주는 부담도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20대의 마지막까지 네모난 일상에서 보내야 하다니….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결국 퇴사가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대의 마지막 29살, 나는 일상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네모난 일상을 벗어나 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유럽으로 떠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포르투갈에서 처음 보는 한국인들과 같이 여행을 다니고, 런던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웸블리에 입성하여 콘서트를 한 방탄소년단의 공연도 보았다. 매일이 특별한 하루하루였고 인생관을 바꿀 정도의 멋진 경험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은 권태감에 무기력했던 나에게 삶의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주었다. 순례길에서 만났던 동행분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정말 후회 없이 많은 여행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해서 만족하고 있거든, 나의 20대에!” 나의 20대는 초조한 마음으로 쉬지 않고 달려온 기억뿐이다. 너무 빨리 달리려다 너무 많은 걸 놓쳤다. 결국 골인 지점엔 다가서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후회가 막심했다. 하지만 그것을 겪었기에 이번 여행에서 더 큰 깨달음과 울림을 얻었다고도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 일상을 그만둔다는 것은 복합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들로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생각들과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이 있었다. 아마 29살에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모른 채 살아갔을 것들이다. 잠시 멈췄기에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을 봤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다시 일상을 보낼 수 있게끔 힘을 준다. 너무 힘이 들때, 또 너무 아플때 용기를 내어 잠시 일상을 그만두는 것을 추천해본다. 분명, 당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큰 무언가를 얻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