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 1-(1)

조금 느린 기록_29살

by 어제오늘내일

혼밥 레벨 3.

19년 당시 나의 혼밥 레벨은 3으로 패스트푸드점에 혼자 가는 건 가능한 정도의 레벨이었다. 이는 일반음식점에서 혼밥 할 레벨은 안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도시 여행에서는 가고 싶은 식당이 있으면 유랑 같은 카페를 통해 동행을 구할 수 있다. 실제로 사리아에 가기 전 마드리드에서의 3일 동안은 동행을 구해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하지만 순례길 위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눈을 뜨니 아직 날은 어두웠고 침대 밖은 코 고는 소리로 요란했다. 아직 자는 다른 순례객들이 깰까 살금살금 준비를 끝마치고 침대에 누워 쉬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깨어날 때쯤 배낭을 메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밥 어떻게 혼자 먹지?"

알베르게를 나서며 처음 든 생각이었다. 혼밥 레벨 3으로서 순례길 혼밥은 꽤 어려운 퀘스트다. 첫날부터 순례길의 낯섬에 압도되었기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쓰고 그저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순례길인데, 첫걸음부터 혼밥을 걱정하는 스스로가 답답하기도 했다. 앞으로 5일 동안 이 길을 혼자 걸어야 한다. 아무리 혼밥이 무섭더라도 내내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용기를 내야 했다.


해가 안 떠서인지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어둡고 고요한 마을을 조금 걷다 보니 한 식당에 불이 켜진 게 보였다. 식당 앞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거듭하다 용기를 내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에는 사장으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과 나처럼 일찍 길을 나선 듯 보이는 순례객 한 명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식당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카운터 옆으로 진열돼있던 크루아상과 핫초코를 주문했다. 처음으로 혼자 식당에서 밥을 주문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쿵쾅거렸고 설레는 기분이 되었다.

맛은 없었다. 크루아상은 너무 뻑뻑하고 핫초코는 너무 달아 한 입 먹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첫 혼밥에 성공한 뿌듯함에 크루아상 마지막 조각까지 핫초코에 적셔 야무지게 다 먹었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서자, 아직도 이른 시간인 건지 여전히 순례객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식당에 있던 순례객은 내가 음식을 먹는 동안 먼저 길을 떠났다.) 길을 모르는 나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방향을 정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방향이 잘못된 길이었는지, 식당 할머니들이 급히 뛰어나와 나를 잡았다. 그리곤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에게 손짓, 몸짓을 열심히 써가며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정말 감사한 분 들이었다. 덕분에 올바른 길로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알려준 방향으로 천천히 걷다보니 순례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순례길이 처음인 나에게 응원이라도 건네듯 인사를 했다.

"올라!"


DAY1. 사리아 -----> 포르투마린


2019.05.18 사리아의 어느 한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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