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 1-(2)

조금 느린 기록_29살

by 어제오늘내일

길 위의 순례객들은 서로 스쳐 지나갈 때마다 웃으며 "올라!"라고 인사한다. 순례길 위 마을 사람들도 순례객들이 보이면 멀리서도 "올라!"라며 손을 흔든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는 게 어색해 작은 목소리로 대응했던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하게 되었다. 순례길 이후 도시 여행에서 아무도 인사를 하지도 받아주지도 않은 게 어색할 정도였다.






DAY1. 사리아 -----> 포르투마린

사리아를 벗어나 숲길을 걷기 시작할 즘 하늘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곧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이소에서 2000원 주고 산 우비가 바람에 맞춰 힘없이 이리저리 나풀거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순례길 위의 모든 풍경은 아름다웠다. 한국에서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만 보다가 청량한 자연풍경을 보니 눈이 다 맑아진 기분이다. 정말 행복한 기분이었다.


걸을수록 점점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펄럭이는 우비에 버둥거리고 있을 때, 어떤 한국 아저씨가 말을 걸며 내 우비를 정돈해주었다. 그때부터 그 아저씨와 대화하며 순례길을 같이 걷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생장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핸드폰을 잃어버려 그냥 되는대로 걷고 있다고 했다. 지도도 종이지도로 보고 계셨는데, 자유로움과 느긋함이 느껴져 멋있었다. 내가 순례길 첫날이라고 하니 아저씨는 이것저것 알려주면서 본인의 에피소드들도 많이 얘기해주셨다. 모두 다 재미있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중간에 쉬어가자며 들어간 식당에서는 순례길 명물인 오렌지 주스도 사주셨다. 오렌지 그대로 갈아서 만드는 주스라 정말 신선하고 맛있었다.(가끔씩 직접 안 가는 가게도 있으니 주의하라고 팁도 주셨다.) 아저씨와 되는대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순례길 100km 표지판을 못 보고 지나친 건 아쉬웠지만, 생각보다 일찍 포르투 마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마을에 일찍 도착해봤자 할 게 없다면 걸음 되는 데까지 더 걸을 예정이라고 하고 나는 이미 전날 포르투마린에 숙소를 예약했기에, 포르투마린을 끝으로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이름도 서로 모르고 사진 한 장 안 남겼던 반나절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우연히 만난 첫번째 순례길 동행과의 만남은 기억에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KakaoTalk_20210630_155135656.jpg 비바람에 목 돌아간 다이소 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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