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공백을 깨고 다시 시작한 달리기는 낯설었다. 한때 매일 달리던 리듬은 간데없고 자세와 호흡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그 서툰 상태로 되돌아간 듯했다. 첫 바퀴부터 숨이 차올랐고 예전 같은 즐거움 대신 몸의 무거움과 무릎의 뻐근함이 전신을 지배했다. 그렇게 첫날과 다음 날, 엉성한 자세와 불규칙한 호흡을 견디며 간신히 1km씩을 채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분은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무기력의 고리를 끊어내고 내가 원하는 '달리기'라는 행동을 내 삶에 다시 투입했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주는 이틀뿐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전진이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날개에 적힌 '작가 그리고 러너'라는 문구처럼, 나 또한 언젠가 나 자신을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상상해 본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키처럼 더욱 '집요한 나'로 사는 것뿐이다. 돌이켜보면 공백이 길어질수록 나는 나태함에 길들여졌다. 달리기보다 우선하는 핑계들을 발굴하며 스스로 달리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 이번 주 이틀의 기록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나태함과 싸워 얻어낸 최소한의 승전보인 셈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하루키가 선천적으로 강한 의지를 타고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는 정교한 프로세스가 그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초인이 아니라, "아, 힘들다"라고 탄식하면서도 그 고통을 기꺼이 인격의 일부로 받아들인 '집요한 수행자'였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 역시 대단한 비결이 아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일단 문밖을 나서는 무모할 정도의 성실함이다. 호흡이 가쁘고 무릎이 쑤시는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나를 조금씩 변형시켜 줄 것이라 믿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이 집요한 반복의 프로세스를 나의 단단한 일부로 수용하며 나는 내일도 다시 달리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다. 다음 주는 내 안의 나태함을 더욱 이겨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