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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 Oct 30. 2024

전업주부를 졸업합니다.

서툰 시작

13년씩이나 경력이 단절됐던 전업주부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세상에 그런 일이 정말 있기나 할까. 전업주부 생활을 졸업하기로 마음먹고부터 한 순간도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매일 수천 가지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할 순 없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턱 하니 시작할 수도. 내 나름의 조건은 명확했다.

가정경제에 도움이 될 것,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는 일일 것, 내가 나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 아직 엄마손을 필요로 하는 아이를 케어할 수 있어야 할 것. 쓰고 보니 까다롭기 짝이 없다.

과연 이런 식으로 전업주부 생활을 졸업할 수 있을까...


운명은 종종 우연을 통해 찾아온다고 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 선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운동이 나에게 그런 선물이 되었다.

운동을 할 때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땀을 흘리며 몸이 단련되는 순간,

내 안에 쌓여 있던 불안과 고민이 조금씩 풀려가는 걸 느꼈다.

몸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들이었다.

어느새 운동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취미를 넘어 더 많은 것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들어온 공고가 있었다.

'자격증 취득 후 레슨 경험이 없는 새내기 강사님 중에 금, 토요일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할 열정 있는 강사님을 모집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격증을 따기까지는 자신감과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워질 일상에 대한 기대감, 열정, 희망, 기쁨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나도 드디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이제는 현실이다.

나는 무경력자, 비전공자였다. 그리고 적지 않은 40대 중반의 나이,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긴 시간. 

지원서를 써 내려가면서 나의 자존감은 풍선처럼 점점 쪼그라들었다.

‘지원해도 안 될 거야, 젊고 예쁜 강사님들이 많은데 누가 나 같은 아줌마를 뽑아 주겠어.’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역할이 바뀌어 갈 때 나의 존재는 작아지고, 자괴감은 쌓이고, 존재의 미약함에 주눅이 든다.


그러던 중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엉성하게 흩어진 글씨 속에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과 이런 문구가 있었다.

 ‘내가 고백을 하는 것은 나의 마음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방이 한다.’

언제 적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 말에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그래, 지원서를 내는 것은 내 마음이다.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다.


가끔은 “될 대로 되라지” 혹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을 가져야 헤쳐나갈 수 있는 일이 있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OO 씨죠? OO일에 미팅 가능하세요?” 미팅이요?

그 순간 심장이 떨림을 머금고 쿵쾅거렸다.      


돌이켜 보면, 인생은 우연 속의 필연으로 채워진다. 나에게 운동이 그런 필연이었듯이, 앞으로의 나날도 그렇게 채워지기를 바란다. 내가 꿈꾸는 전업주부의 졸업은 서툴게 한 발짝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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