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나 Dec 08. 2020

나를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는 용기

알아차림

  얼마 전에 무척 존경하고 좋아하는 음악가 한 분이 오프라인에서 글 쓰는 공간을 찾았다. 어떻게 찾았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아무튼 되게 비밀스러운 기분이었다. 그 분이 자신의 글을 숨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도 본인의 활동명을 밝혀놨음에도 왜 은밀한 기분이었을까. 글의 내용 때문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의 속마음과 과거 얘기가 의식의 흐름대로 적혀있는 글들. 어찌보면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라 누군가에게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고 원치 않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글들이었다.


  팬 입장에서 이런 곳을 발견했다는 기쁨과 함께 부러움이 들었다. 이 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으면서도 또 이렇게나 솔직할 수 있구나. 스스로를 감추거나 꾸미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또는 내용에 제한을 두거나 거를 필요 없이 그냥 편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본인을 내보일 수 있는 공간이 있구나, 싶어서. 그리고 브런치 생각이 났다. 나도 충분히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뭐가 무서워서?


  내 자신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인스타 아이디가 세개가 있고, 이 세개가 다 다르다. 하나는 내 일상과 지인 소통용, 하나는 요가 관련용, 하나는 그냥 잡다한 용도로 사용 중이다. 하지만 일상용 말고 나머지 두개는 잘 쓰지 못하고 있다. 이 세개를 합쳐서 하나로만 해도 되는데, 왜 굳이 나를 나누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가?


  명상 컨텐츠를 올린 유튜브 계정이 있다(글을 다시 보고 있는 지금은 없다). 지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 나를 아는 이들에게는 내가 하는 것들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오픈하지 않았다. 왜? 조용하게 숨 쉴 곳이 필요해서. 그러면 평소의 나는 숨 쉬지 못하고 있는가?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 그리고 정말 온전한 나. 이 둘 사이의 간극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나보다. 그러니까 자꾸 나만의 공간에 집착을 하는 것이 아닐까. 타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일지 보이는 것에 대해 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나를 이런저런 사람으로 각자의 방식대로 생각하는 게 두렵고 싫기도 하다. 나는 굉장히 우울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밝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어떤 때는 그 누구보다도 밝다. 이 밝음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 나의 면이다. 하지만 글 안에는 주로 우울한 얘기를 쓰고 싶어지고, 그로인해 사람들이 나의 밝은 면들을 놓칠까봐, 저 사람 굉장히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할까봐 두렵다. 그렇다고 우울한 감정을 삭히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커서 어디든 쏟을 곳이 필요하다. 그 수단이 글이 될 때 가장 배설효과가 크다. 또는 그 글을 읽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위로나 뻔한 공감은 피하고 싶다. 위로나 공감을 원하지 않는데, 이미 글을 쓰는 행위에서 충분한 위안을 얻는 중인데. 어느새 몇몇 이들은 명목으로는 나를 위로하면서 본인의 이야기로 넘어가 있다. "나도 그래" 와 같은 말을 하면서. 이렇게 내가 가장 힘든 순간마다 또는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을 때마다 타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반응들이 싫어서 공개된 곳에는 되도록 올리지 않고 감춘다. 가까운 친구도 마찬가지고, 사람들과 관계를 가질 때도 적당히 내 생각을 숨기며 산다.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선을 넘는 행위가 되거나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그 생각 자체가 오만일 수도 있고 당시의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 말을 줄이고, 웃음과 맞장구를 늘린다. 그렇게 되면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의 만남 이후에 후회하거나 반성할 것들이 줄어들어서 조금은 낫다. 그러나 이것 또한 피로하다. 웃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무표정이고 싶다. 반응할 것이 없어서 괜히 맞장구 치는 것도 지친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는데 괜히 애써서 재미있을 법한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 말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하는 말에 큰 관심이 없다. 관심 없는 얘기를 하는 게 피로하다.


  그래서 브런치에 가장 솔직한 나를 적어내려가기로 했다. 그 다짐의 일환으로 내 요가 인스타그램계정에 올려놨던 브런치 url을 삭제했다. 혹시나 나를 아는 사람이 여기까지 들어올까봐. 이것도 나를 분리시키는 작업이겠지. 누군가가 눈쌀을 찌푸릴만한 혹은 이상하다고 생각할만한 글들을 마음껏 적어나가고 싶다. 그렇게 나에게 숨 쉴 공간을 주고, 서서히 나도 그 음악가처럼 타인 앞에서의 나와 은밀한 나를 연결시켜서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무엇이 두려운가. 그저 나일 뿐인데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