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새벽 수영을 그만 두고 오늘 처음으로 평일 낮에 수영을 하러 갔다. 사실 하마터면 낮잠과 노곤함에 빠져 포기할 뻔 했으나, 전날에 나를 잘 모르는 이에게 오늘 낮에 수영 가는 것이 목표라고 미리 말을 해둔 탓에 그에게 떳떳하고자 몸을 일으켰다.
가는 길은 뛰어서 갔다. 버스보다 오히려 짧은 러닝을 거치고 하는 수영이 나에겐 더욱 맞다는 것을 알기에. 마치 준비운동과도 같다. 새벽에는 차가 없어서 사실 빨간불일 때도 도로를 자주 건넜다. 오후 3시의 거리는 제법 차가 많아서 신호마다 멈추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고 15분 정도 뛰다가 길가에 자전거를 잡아타고 빠르게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물에 몸을 담갔다. 사람은 많지는 않았으나 얕은 레일 쪽에는 강습받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뒤에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속도와 쉬는 타임을 조절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여러 영법을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어서도 좋았다. 그 때문에 자유수영을 선택한 것도 있었지만, 그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아까 준비운동을 할 때만 해도 새벽수영을 계속 유지할 걸 그랬나 싶어 많이 혼란스러웠는데 물 안에서 물고기처럼 접영발차기를 하는 동안 아, 자유로움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오늘 수영에서는 배영이 조금 더 편해졌다. 나는 배영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이번엔 무릎을 조금 구부리면서 발차기를 해봤고, 팔을 평소보다 느슨하게 위로 길게 뻗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했더니 리듬감이 느껴지며 속도도 나왔고 심지어 턱끝을 당겨 몸이 레일에서 멀어지는 것을 살필 수도 있었다. 아마 새벽보다 내 플랫한 척추가 조금 풀어진 덕도 있을테지. 접영의 팔은 옆 사람과의 거리 때문에 조금 작게 움직이며 했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팔을 몸통에 붙이고 해보고 싶어졌다. 물고기처럼! 프리다이빙을 미리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발차기를 했더니 정말 몸이 꾸물텅 유연하게 물 안을 가로질러 나갔다. 더 아래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숨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나와야하는 것이 아쉽다.
그렇게 수영을 마쳤다. 몸을 씻으면서도 머리가 고요했다. 오히려 새벽보다 더.
그렇게 멍하니 오후 다섯시 반의 거리로 나왔다. 자전거를 타며 하천길을 달린다.
아, 너무 아름답다.
눈 앞에 시야를 가득 채운 하늘. 노을이 끝나버리고 조금 어둑해진, 양털 구름이 그려진 푸른 잿빛의 하늘. 하천변을 따라 펼쳐진 붉게 단풍 든 나무들과 가지 끄트머리로 보이는 구름 새로 비치는 달. 바람이 불자 나무들은 제 마른 잎사귀들을 살랑댄다. 가을 저녁만이 품을 수 있는 다정하고 시린 바람이 분다. 그 사이로 수많은 낙엽의 젖은 냄새가 담겨온다. 그 바람을 맞이하며 홀로 걷는 사람들. 저녁을 닮아 고즈넉한 눈길들. 아름다워라. 두다리로 자전거를 부드럽게 밀고 나갈 때 느껴지는 몸의 감각. 피부에 와닿는 어스름 진 저녁의 체취. 옆으로 기다랗게 흐르는 하천물이 돌과 부딪힐 때 나는 찰랑대는 소리와 그 안에서 부서지는 가로등의 흰 불빛, 건물의 야경, 그리고 어느새 선명해진 노란 달.
아, 나는 살아있구나
지금 이곳에 살아서 충만한 풍경을 누리고 있구나
이 아름다운 것들을 나는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감히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그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혹시나 흠집이 생길까봐. 그래서 여기에 글을 쓴다. 나의 온 마음을 담아내기 위해서. 몸에서 넘치는 충만함을 분출하기 위해서. 내가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온전히 만끽하자. 기억하려고, 묘사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자. 이름을 붙이지 말고, 느낌을 표현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자. 그래, 나는 이 완벽한 가을의 저녁을 자전거를 타며 만끽하고 있구나. 이곳에 존재하고 있구나.
내가 어느 순간에 행복한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무언지. 이렇게 선명하게 깨닫는 때가 온다.
갈등을 이기고 갔던 수영은 나에게 이렇게 가득찬 마음을 주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