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 다섯 번째 열쇠 : 헤세와 함께, 계획 없는 시작
새해 첫날,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방으로 들어가 책장 앞에 서서 올해의 첫 책을 골랐다. 시작을 함께할 만한 의미심장한 제목들 사이에서 꼬질꼬질 오래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너로 정했다! 맨 뒷장 기표에는 어린 시절 할머니 댁 근처에 있었던 서점 이름이 쓰여있다. 아마도 없어진 지 한참 되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기마다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많은 식물을 키우고 난 뒤 읽는 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하며 독서를 시작했다. 얇고 가벼운 책이라 두 시간 만에 뚝딱 읽으면서도 마음에 남는 문장이 많아 찰칵찰칵 핸드폰에 담았다. 식물의 성장과 죽음을 보면서 현재 상황에 대입해 보기도 하고, 상징이나 은유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헤세 아저씨도 같은 취미를 가졌다고 생각하니 조금 친근해졌달까.
그렇게 내향 식덕인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고, 리스트를 검색하다 『싯다르타』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식덕 다음에 불교라니, 완전 무나니스트 재질이잖아? 그의 MBTI를 궁금해하면서, 망설임 없이 26년 두 번째 책을 다운로드했다. 제목만 보고는 슴슴~하니 고요한 독서를 기대했는데, 마라맛 개꿀잼 내용이라 오히려 도파민이 싹 돈다. 여기서 멈추지 못하고 『데미안』까지 연달아 읽으며 새해 첫 주를 마무리했다.
연초가 되면 한 해의 계획부터 세우게 된다. 이건 꼭 하고, 저건 하지 말고, 지켜야 할 목록이 늘어날수록 마음은 단정해진다. 하나씩 실행하고 체크 표시를 그릴 때의 만족감을 좋아하지만, 조금만 틀어져도 ‘숙제 못 한 사람의 찝찝함’이 같이 따라온다. 지키면 성공, 지키지 못하면 실패라는 기준을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지켰다고 해서 성공인 것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인 것도 아니었는데, 매번 그렇게 열심히 선을 그었다.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 『싯다르타』 중에서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아, 올해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 시작해 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고빈다처럼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눈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우연히 손에 잡힌 책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이 마치 미래의 무나니스트가 남겨준 힌트를 찾아낸 것만 같다. 『싯다르타』의 다음 문장도 그 힌트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는 시간을 지양할 수가 있으며, 과거에 존재하였던,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생명을 동시적인 것으로 볼 수가 있어. 그러면 모든 것이 선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바라문이야. 따라서 나에게는 존재하고 있는 것은 선하게 보이며, 나에게는 죽음이나 삶이 다 같게 보이며, 죄악이나 신성함이 똑같이, 지혜로움이나 어리석음이 똑같이 보여. 세상만사의 이치가 틀림없이 그러하며, 세상만사는 오로지 나의 동의, 오로지 나의 흔쾌한 응낙, 그리고 나의 선선한 양해만을 필요로 할 뿐이네. 이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나를 후원해 줄 뿐, 나에게 결코 해를 입힐 수는 없으니 말이야”
― 『싯다르타』 중에서
시간 식빵설은 과거, 현재, 미래가 차례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미 한 덩어리의 빵처럼 모두 함께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 잘린 단면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가설이다. 식빵은 이미 온전해.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사랑하면서 감사하게 맛있게 먹자~ 하고 싯다르타가 가져온 빵을 바라본다. 근데 누가 독을 탔으면? 상했으면? 하고 두려움이 올라오는데, 어찌 덮어놓고 일단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가 있지? 의문에 휩싸인 채 데미안으로 넘어갔다.
분명 언젠가 읽었을 텐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고, 읽는 내내 왠지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나쁜 짓을 할 것만 같고, 결국 망하게 하려는 거 아닌가 초조해하며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해 보니 데미안도 에바부인도 실존 인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앞서 걸어간 언젠가의 싱클레어일지도? 깜짝 놀라 곧바로 처음부터 다시 책을 읽었다.
그렇게 두 번째 읽은 데미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싱클레어의 편이었다. 무섭고 기괴하게 느껴졌던 대사들도 이제 보니 전부 응원으로 들린다.
“싱클레어, 어린아이로군요!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는데요. 언젠가 그것은 완전히 당신 것이 될 거예요. 당신이 꿈꾼 대로요. 당신이 변함없이 충실하면요.”
― 『데미안』 중에서
두 권의 책 모두 뽀뽀 쪽쪽 사랑해요~ 하고 끝나지만 각자 이야기하는 사랑의 방향은 다르게 보인다. 데미안이 미래에서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식빵도 너를 사랑한대.
이 사랑은 쌍방이야! 그러니 안심하렴.
다 읽고 나서 책이 쓰인 순서를 보니 데미안이 먼저고 싯다르타가 이후였다. 의도치 않게 역주행으로 읽어버렸는데, 순서가 꽤 중요한 것 같다. 헤세 아저씨는 전쟁을 통과한 뒤에 마음속에서 솟아 나오는 뭔가가 있는데 그게 아직 뭔지는 모르겠고... 그때 운명이 멱살 잡고 터프하게 이끌어주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걸까? 그러다 아, 운명이 나를 갈구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구나를 깨달은 것이고. 싯다르타에서는 우리는 사실 모두 같은 편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데미안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안과 의심은, 그것이 이미 내 편이라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운명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믿지 못한 채 계속 경계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길을 따라간다고 반드시 성공하거나 보호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흐름이 나방이 나방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을 배반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리로 향하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싯다르타에서 말하는 사랑도 ‘애써 선택하는 삶의 태도’라기보다는 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제는 식빵이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내가 식빵을 사랑하는 것이 더 이상 다른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헤세 위크를 보내고 뭔가가 달라졌기를 기대하며 신창사 지원서를 준비하는 1월을 보냈다. 작년 말에 지원했던 상상인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일 즈음에는 괜히 메일함을 하루 종일 새로고침했고 당연하게 예견되었던 낙방에도 성실하게 실망했다. 계획 없는 시작과 함께 찾아온 막막함을 견디기 위해 수영을 했고, 우쿨렐레를 연주했다.
↓헤세 위크의 엔딩곡 : 한로로 '사랑하게 될 거야'
데미안도 에바부인도 아군인 것을 알았으니까, 이제 안심하고 우당탕 흘러가는 2026년을 바라보며 내 몫의 맛난 식빵을 냠냠 뜯어 먹는 한 해를 보내려 한다. 이왕이면 화이트리에 빵이면 더 좋겠다는 소망도 쪼금 빌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