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뿌리, 언더독(Underdog) 전략
'언더독(Underdog)'. 스토리 속 대결 구도가 형성됐을 때, 패배가 예측되는 약자 또는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이에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승리 가능성이 높은 강자, 탑독(Topdog)이 있죠.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웬만한 국가보다 높은 GDP를 자랑하는 글로벌 브랜드 애플(Apple)은 이제 누가 보더라도 탑독(Topdog)의 위치에 오른 승자입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 고친다면, 애플은 '여전히' 언더독을 지향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애플의 '언더독 전략'은 창업가 스티브 잡스의 스토리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되고,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을 창업하기 까지. 스티브 잡스의 생애는 전형적인 '언더독' 스토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더독에는 2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 불이익', 또 하나는 이를 이겨내려는 '열정과 의지'죠. 두 가지 모두 높은 브랜드가 비로소 언더독이라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외적 불이익'을 당하고 있지만 열정과 의지가 낮다면, 언더독이 아니라 그냥 희생자(victim)일 뿐입니다.
- <김상훈의 진정성 마케팅> 중
스티브 잡스의 '언더독' 정신이 애플에 대입되어, 소비자들에게 극적으로 전달된 첫 순간이 바로 맥킨토시를 발매와 함께 런칭한 <1984> 영상입니다. 매킨토시 발매 당시 시장을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IBM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 빅 브라더에 비유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광고이죠.
이후 애플은 '언더독'을 상징하는 기호들을 더욱 다양하게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애플을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인식된 <Think Different> 광고에 등장시킨 인물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마틴 루터 킹, 마하트마 간디, 무하마드 알리 등 다양한 인물들(기표)을 통해 '외적 불이익'을 이겨낼 '열정과 의지'(기의)를 전달합니다.
그렇다면, 초거대 브랜드가 된 애플이 여전히 언더독 스토리텔링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정서적 거리감 완화'입니다. 브랜드의 규모가 커질수록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하는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렵죠. 브랜드와 개인 간 규모의 차이에서 오는 정서적 거리감 때문이 가장 큽니다.
정서적 거리감을 완화하는 가장 극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언더독 스토리텔링입니다. 사람들은 외재적 불이익을 열정과 의지로 이겨내는 언더독 스토리에 동질감을 느끼죠. 그 동질감은 곧 브랜드와 소비자들의 첫 번째 접점으로 작용합니다. 이미 초거대 브랜드로 자리 잡은 애플은 그 규모가 더욱더 커질수록 언더독 스토리텔링이라는 카드를 자주 꺼내 들지 않을까 싶네요.
두 번째 이유로는 '언더독 스토리텔링의 확장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언더독 스토리텔링'의 시초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입니다. 힘과 체격이 월등히 좋은 골리앗에 맞서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 승리를 쟁취해낸 다윗의 이야기죠. 언더독 스토리텔링은 인물과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습니다. 대표적 <해리포터 시리즈>와 <록키 시리즈>를 예로 들 수 있죠.
스토리텔링에 있어 몰입을 높이는 갈등 요소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갈등 요소가 인물의 외부에 존재하는 외재적 갈등과 인물 내면에 존재하는 내재적 갈등, 두 가지죠. 이제까지의 언더독 스토리텔링 대부분은 외재적 갈등(외적 불이익)에 치중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새롭게 내재적 갈등 요소의 해소에 집중한 콘텐츠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토리텔링은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양하게 변주될 때 그 힘이 더 커지기 마련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