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2024년 8월,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 속.
나는 늦은 저녁까지 사무실에 남아 에어컨 바람에 기대어 밀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주말 당직의 장점은 사무실에 혼자라는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
그 덕분에 흐름을 타고 집중하고 있던 찰나,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전기에서 터져 나오는 지령요원의 목소리였다.
"신속히 출동 바랍니다."
순찰요원들의 출동 지령이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수사 당직자들에게도 호출이 떨어졌다.
출동 전, 무전 내용을 확인하던 나는 모니터에 찍힌 네 글자에 잠시 숨이 막혔다.
‘가정폭력’
수사 당직을 서면서 가장 자주 접하는 신고는 단연 가정폭력(이하 '가폭')이다.
가폭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그러나 대부분 부부 혹은 부모와 자식 간에서 벌어진다.
이날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부부가 함께 술을 마시다 다툼이 일어났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취해 있었고, 서로를 향한 날 선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긴장감. 마치 불씨 하나만 튀어도 터질 것 같은 화약고 같았다.
수사 당직자들과 현장 경찰은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그들의 화를 가라앉히고, 인적사항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방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지저분했고, 코끝을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그 가운데 울먹이는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쏟아냈다.
만남의 과정, 자식 자랑, 서운했던 기억들…
1시간 가까이 이어진 하소연에 나는 그들의 지난 세월을 의도치 않게 훑게 되었다. 마음 같아선 사건 처리 절차만 간단히 안내하고 돌아서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오히려 분노를 키우기 십상이다.
그들은 사실 ‘처벌’보다 ‘들어줄 누군가’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소연할 곳이 없어 결국 경찰에 신고하는 것. 그게 우리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가정폭력 신고'의 민낯이다.
물론, 정말 급박한 위험이 벌어지는 신고를 제외하고 말이다.
결국, 경찰 6명이 출동하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건 속에도 치명적인 위험은 도사린다.
강력범죄, 심지어 살인까지도 가정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가폭 신고는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결코 만만치 않은 신고다.
자주 발생하지만, 절대 가볍게 다뤄선 안 되는 범죄.
그래서인지 출동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정은 사랑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고,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안전해야 할 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가장 흔하게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까울수록,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상처는 깊어지는 걸까.
2025년 5월.
오늘도 어김없이 수십 건의 가폭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리고 씁쓸함은 더욱 커져 가슴 한구석에 깊숙이 자리 잡는다.
사랑의 공간에서 상처를 느끼는 이 감정이, 언젠가는 사라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