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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Dec 19. 2016

찌질한 사람이 살아가는 법

혹은 민원실 주사 아저씨와의 2년에서 얻은 교훈

중학교 2학년 때쯤, 나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따져보게 됐을 무렵부터 난 나를 찌질하다고 여겨 왔다. 공부, 운동, 인간관계 등 잘난 이들의 반대 쪽이 내 코너라고 믿었다. 그 후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된 건 내가 실제로 찌질하다는 슬픈 사실, 그리고 찌질한 이들도 세상을 살아갈 나름의 방법이 있다는 위안이다.

3학년 1학기까지 마친 2001년, 남들보다 늦게 공익요원을 시작했다. 근무처는 국민고충처리 위원회 민원 분류계. 편지, 이메일 등 전국에서 오는 온갖 민원을 처음 읽는 부서다. 대체 무슨 내용인지 파악해 어느 기관에서 처리할 일인지 써넣는 게 주 업무였다. 민원 분류계는 계장님과 서무, 머리 희끗희끗 한 주사 아저씨와 나 이렇게 4명으로 꾸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주사 아저씨는 여러모로 보통 분이 아니었다. 10급부터 시작해 6급까지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오신 50대 후반의 뚱뚱 한 아저씨로, 성격이 고약했다. 더 이상 승진은 어려운 나이,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사무실에서 인기 직원이 아니었다.      

사무실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주사 아저씨는 사무실 컴퓨터를 싹 고쳐놓으라고 윽박지르셨다. 나는 차근차근 설명드렸다. 20대 라고 모두 컴퓨터를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특 히 수리는 어렵죠. 본체를 열어본 적도 없는 제 가 만지면 오히려 더 망가지지 않을까요? “쓸 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고쳐라.” 결국 컴퓨터 수리 책을 한쪽에 끼고, 공대 출신 공익에게 배워가며 몽땅 수리했다.   

민원 분류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대다수 민원 인이 글쓰기에 낯설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늘 어놓아 정작 해결해야 할 민원이 뭔지 모르겠 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어르신 분들의 민원 편 지엔 인생사가 통째로 들어 있다. 부유한 집에 서 태어났으나 친척들에게 속아 가난해진 사연 부터, 장성한 둘째 아들이 속을 썩여 하루도 수면제 없이는 못 잔다는 하소연까지. 마음은 아프지만 15장짜리 편지 속 어딘가 있을 핵심 민 원을 찾아내는 게 본업이라 내 쪽도 적잖이 불만이 쌓이곤 했다.

이상한 민원인 역시 우릴 힘들 게 했다. 차마 민원인에게 진상이란 표현을 쓸 순 없다. 그냥 민원인의 2퍼센트 정도는… 세상에 얼마나 다 양한 인간이 사는지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고만 이야기하자. 매일매일 민원을 분류하고 또 분류하는 일을 1 년 남짓하던 중 나에게 초대형 사건이 터졌다. 민원 편지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엎친 데 덮 친 격으로 편지 주인은 앞서 말한 2퍼센트였다. 자기 민원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며 민원인은 사무실로 찾아와 항의했다. 여긴 엄연히 공무 조직이다. 문서란 모두 공식 문서다. 과장님 계장님 모두 난리가 났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제가 잃어버렸습니다.” 주사 아저씨가 말했 다. 나는 내가 잃어버렸다고 말하려 했으나, 주 사 아저씨 왈 “시끄럽다. 일이나 해라.” 워낙 연 세 높은 분이 한참이나 머리를 조아린 터라 민 원인도 그냥 넘어갔다. 주사 아저씨는 과장님 에게 심하게 깨졌다. 하루 이틀 하시는 일도 아 니면서 왜 일을 엉터리로 처리하느냐는 힐난이 사무실 저편에서 들려왔다. 사건 이후 1년을 더 함께 일하며 아저씨와 난 서로를 더 알게 됐다.

다이어트 때문에 점심을 거르신다던 주사 아저씨는 사실 외벌이에 대학생 자녀까지 있어 돈 아끼려고 점심을 거르는 거였다. 한 달에 한두 번 동료들과 식사하러 나 가는데 우연히 나를 마주치면 셔츠 윗도리에서 만 원짜리를 하나씩 꺼내주시곤 했다(아저씬 지갑을 안 들고 다녔다). 나는 아저씨가 한국 문학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최인훈의 소설 『광장』 특별판을 구해 선물했다.

28개월만에 공익요원 임기는 끝났고, 나는 번잡한 대학생활로 돌아왔다. 1년 후쯤 전화가 왔는데 주사 아저씨 아들이었다. 아버님이 뇌 출혈로 쓰러져 병원이며, 한번 찾아와 줄 수 있 느냐는 내용. 평소에 아버지가 “말 안 듣는 장 섭이” 이야기를 가끔 하셨다고 한다. 난 말도 잘 들었고, 이름이 장섭(정섭이다)도 아니었지만,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주사 아저씨는 왼쪽 전신이 마비돼 말도 못 하셨다. 자꾸 환자복 위 에 손 올리는 제스처를 취하기에 뭔가 했더니 예전에 점심값 주던 버릇이었다.

잘난 이들이 제 알아서 살아가는 동안, 혼자 버 티기 부족한 찌질이들은 함께 기대어 세상을 살 아낸다. 2001년, 서대문구 관공서 사무실 한켠 에서 공익요원과 나이 든 주사 아저씨 사이에 일 어난 일도 그런 종류의 것일 테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계신 찌질한 이들은 모쪼록 함께 하도록. 내가 찾아낸 방법은 그것뿐이니.

Tip + 유독 더 찌질한 독자에겐 언니네 이발관의 4집 수록곡 <꿈의 팝송>을 추천합니다. 음악으로 위로받는 건 고작 들을 때뿐이지만, 그렇게라도 위로받는 게 어딥니까.


대학내일 이정섭 에디터 munchi@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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