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야끼도리를 맛있게 먹는 법
매달 한 번 정도, 치유가 필요한 금요일 밤이면 찾아가는 야끼도리(일본식 닭꼬치) 가게가 있 다. 장소는 비밀. 이미 손님이 너무 많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다찌(술집의 바 자리와 비슷 하다) 자리에 혼자 앉은 후 “아사히 생맥주 한 잔 먼저 주세요. 메뉴는 천천히 주문할게요.” 메뉴 속 요리 맛을 하나씩 상상하며 오늘의 식사를 구상한다.
'식사를 구상한다’라니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 가게는 일본에 본점이 있는 꼬치구이 체인점이 다. 메인 디시를 시키면 자잘한 메뉴가 따라나 오는 우리나라와 달리, 모든 메뉴를 직접 골라 야 한다. 삶은 완두콩(에다마메)도 따로 돈 내야 하니 매정하다는 이들도 있겠으나, 원하는 대 로 식탁을 꾸미는 재미가 있다.
먼저 나온 맥주를 빈속에 쭉 들이킨다. 속이 뻥 뚫리며 금세 취기가 오른다. 이 가게에서 음식 을 고를 땐 나름의 원칙이 있다. 기름진 메뉴 와 담백한 메뉴를 섞는다는. 기름진 것만 먹으 면 혀가 텁텁하다. 반면, 담백한 것만 자꾸 들 어오면 입이 심심하다. 기름-담백-기름-담백, 두 가지를 번갈아 먹어야 서로 단점은 잡아주 고 장점은 키워준다. 눈앞의 유혹에 급급해 닭 꼬치-닭 꼬치-닭 꼬치-문어 튀김 같은 기름진 조합을 몇 번 겪은 후 세운 결론이다.
주문한 메뉴는 하나씩 차례대로 나온다. 시작 은 늘 그렇듯 대창 꼬치(호르몬 야끼)다. 대창 을 작게 잘라 화로 위에서 돌리면서 겉을 얇 게 구웠고, 위에 양념을 발랐다. 그 맛은…. 이 가게의 대창 꼬치는 100%다. 평소 대창을 안 먹는 와이프도 좋아했고, 지방 구석구석 촬영 다니며 맛집 귀신이 된 포토그래퍼 친구도 엄 지를 척 올렸다.
대창 덩이 서너 개를 쉬지 않고 입으로 넣곤 맥 주 한 모금으로 마무리한다. 대창도 맥주도 딱 히 좋아하지 않지만 둘이 함께 만나면 그건 전 혀 다른 이야기다. 고소함과 청량감, 느끼함과 차가움 뭐라 규정하기도 어려운 온갖 감각이 엉키고 설키며 미각이 최대한으로 치닫는다.
대창의 감격을 끝내고, 다음 메뉴는 닭다리 살 에 와사비를 바른 ‘와사비 야끼’. 닭에서 나온 기름이 와사비의 쏘는 맛을 감싸 많이 발라도 맵지 않다. 오히려 매운맛 속에 가려져 있던 와 사비의 묘한 단맛이 강조된다. “저기, 와사비 좀 더 주시겠어요?” 와사비를 정량보다 훨씬 더 바른다. 가만 보니 와사비 자체도 꽤 맛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한 에피소드에 흰 쌀밥에 와사비만 넣어서 비벼먹는 와사비밥 이 나오던데. 와사비 야끼랑 함께 나온 츠쿠네 (닭으로 만든 오뎅이랄까?)까지 먹은 후 담백 한 메뉴로 넘어간다.
뻔한 이야기지만 세상엔 우리 의지와 무관하 게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 나를 위해 준비된 듯 착착 진행되다가도 어느 날엔 모든 게 무 너진다. 롤러코스터 같은 세상사에서 우리 감 정의 방파제가 되는 건 삶을 촘촘히 채워주는 일상의 리추얼이다.
창작자들의 일상 습관을 다룬 책 <리추얼> 서 문에서 김정운 교수가 말했다. “삶의 의미는 올 림픽 메달 수여식과 같은 대단한 세리모니를 통해 얻어지는 건 아니다. 그런 세리모니는 평 생 한두 번이면 족하다. 팝스타, 영화배우들이 알코올 중독, 마약 등으로 망가지는 이유는 그 런 특별한 행사를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만들 고,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 이다. 일상의 사소한 반복을 가치 있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여러분도 굳이, 일부러, 음미할 수 있 는 일상의 리추얼을 만들어보시길. 온전히 내 것인 사소한 일상을 즐기는 방법을 말이다.
대학내일 이정섭 에디터 munchi@univ.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