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사형선고일인 오늘을 거론하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결국 이런 기사가 났다. <2월14일, 밸런타인데이보다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로 기억해주세요> 경향 신문
발렌타인데이에는 자고로 이런 기사가 늘 나온다. 이건 잘못된 기사다.
왜냐?
우선, 오늘은 안중근 의사의 탄생일도 사망일도 아니다. 일본제국 법정이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날일 뿐이다. 안중근 의사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분이니 그를 기리는 건 옳다. 단순히 안중근 의사가 대단한 일 해서가 아니다. 이익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해 행동하는 게 우리사회에 옳은 가치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건 우리 사회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이들을 높게 치겠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형선고일을 기리는 건 이상하다. 우리가 다른 독립투사의 사형선고일을 기리는 게 있는가. 없다. 누구의 사형선고일도 기리지 않는다. 사형선고일이 아무 의미가 없는 탓이다. 앞서 말한 탄생일, 사망일, 혹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라면 또 모를까.
그렇다면 유독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만 언론이 거론하는 건 왜일까? 발렌타인 데이에 연인끼리 사랑을 나누는 걸 비판하기 위해서다. 세상이 엄혹한데 희희낙낙 연인끼리 웃고 놀아야 되겠는가,라는 게 속마음이다. 엄숙주의 논리다. 발렌타인데이는 제과업체들이 만든 상업적인 날이니 무시해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도에서 비롯됐다.
여기엔 또 2가지 잘못이 있다. 첫번째는 각자의 주장이 다를 순 있겠으나, 나는 엄숙주의 논리 자체를 비판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었든 지금의 발렌타인 데이에서 나쁜 구석은 딱 하나다. 선물 주고받느라 돈 쓰도록 만드는 것 정도. 그런데 내 주위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발렌타인 데이에 요즘은 과도한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드물다. 명절 제삿상 마련처럼 과도한 지출을 조장하지 않는다. 뭐 이건 귀납적 판단이니 그렇다 치자.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다.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연인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꿈꾸는 이들은 발렌타인 데이를 계기로 이를 타진해본다. 우리 사회 '사랑의 총량'을 늘어나는 날이다. 나는 언제나 누가 딱히 고통받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랑의 총량이 높아지는 쪽이 선(善)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발렌타인 데이는 선한 날이다.
더 큰일은 이것이다. 애국이란 이름으로 연인간 사랑을 비롯한 다른 요소를 억압하는 것. 애국이 철지난 가치여서가 아니다. 애국의 대상이 사유화된 국가나 특정 정부가 아닌 공통체라면 애국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애국이 지키고자 하는 건 바로 이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즐겁게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다. 발렌타인 데이에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라를 지키고 희생하는 것이다.
'애국'이란 두 글자가, 무언가 주장하는 이들을 입닫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 그거야 말로 비애국적이며, 발렌타인 데이로 '희희낙낙'하는 세상보다 더 위험하다 생각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도덕적 명사라는 이들은 자신의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대신 다른 이들의 즐거움에 간섭하는 데서 보상을 얻는 사람들이다."
덧붙여 안중근 의사가 형장의 영웅으로 떠나신 날은 3월 26일이다. 이날을 기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