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작가 천지혜
주변 글 좀 쓰는 친구에게 “웹소설 써보는 거 어때?”라고들 한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스펙에 상관없이 누구든 웹소설에 도전할 수 있 으니까. 다만, 아이디어와 필력, 웹소설에 대한 이해 등등등 재능이 꽤 필요하다. 스펙이 필요없지 재능까지 필요없는 건 아니라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럼에도 웹소설 작가에 관심 있는 독자 들을 위해 천지혜 작가를 만났다.
천지혜 작가는 네이버에 웹소설 『블러셔와 컨실러』, 『금혼령, 조선혼 인금지령』, 『나의 수컷 강아지 연재』 등을 연재했으며, 『금혼령』은 방 송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천지혜 작가는 ‘공모전의 여왕’이었다. 학교 다닐 땐 마케팅 공모전 을 휩쓸었고 졸업도 하기 전 유명 홍보회사에 입사했으나 우여곡절 (?) 끝에 웹소설 작가가 됐다. 그래서인지 상상하던 소설가 이미지와는 달랐다.
천지혜 작가는 독자를 분석하고, 주변 반응을 통해 아 이템을 발전시킨다. 소설 쓰기 전엔 기획서만 300장씩 만들어 눈길 끄는 포인트 등을 다 기획해둔다고 했다. 마케팅 전문가와 소설가가 퓨전한 느낌이랄까.
(말도 정말 잘하고, 목소리도 심하게 좋았다.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 불공평한 세상)
대학내일 이정섭 에디터 munchi@univ.me 사진 박광희
에디터: 작가님이 연재하고 계신 <나의 수컷 강아지>를 보았습니다. 웹 소설을 처음 접하는 저로선 충격이었지요. 제 충격을 독자에게 공유하고자 소개 글을 전하면 ‘우리 집엔 꽃미남 반인반견이 산 다. 나를 물고 빨고 핥는 그놈. 그놈이 수상하다. 사랑에 배신당 해 눈물짓던 어느 퇴근길, 지온은 교통사고 당한 강아지를 집에 데려오는데. 다음 날 아침, 웬 초절정 섹시남이 나를 안고 잠들 어 있다! 알고 보니 너는 뽀뽀를 하면 개로 변하는 변화무쌍 반 인반견!’ 자, 이제 발상의 해명을 들어봅시다.
천지혜: 네? 해명요?(깔깔 웃음) 소재를 다방면에서 찾고 있었어요. 그 러던 중 제가 키우는 강아지에 눈이 가더라고요. 강아지가 사람 처럼 굴 때가 많잖아요. 저희 집 개는 암컷이지만, 만약 얘가 수 컷이고 예측 못 하는 순간 남자로 자꾸 변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까? 제가 아이템이 떠오를 때마다 짧게 써서 동생에게 보내거든 요. 이 아이템을 듣고 동생도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설정해봤더 니 의외로 풀 이야기가 무궁무진했습니다.
에디터: 기존 소설보다 가볍게 빨리 읽힙니다.
천지혜: 독자와 플랫폼이 원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그것에 맞춰야 창작 자에게 기회가 생기거든요. 두 번 연재했던 저도 네이버 웹소설 심사를 통과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전작 『금혼령』 이후에 작품 을 3개 제안했는데 거절당했죠. 이건 드라마 같아서 안돼요. 에 세이 같아서 안 되요. 웹소설스러운 기획을 달라고 하시더군요. 『나의 수컷 강아지』는 철저히 10대가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을 바 탕으로 글을 썼어요. 시작은 ‘이거 웃기지 재밌지?’ 하다가 결국 에는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죠. 20대 독자들이 읽고 유치한 것 같더라도, 스낵 컬처라고 여기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에디터: 등장인물이 좀 적은 것도 웹소설의 특징인가요?
천지혜: 네. 맞아요. 웹소설은 인물이 많이 등장할 수가 없어요. 많아봤 자 5명 안쪽? 독자들이 제 소설만 읽는 게 아니라 여러 소설을 한꺼번에 읽으시니까. 지나다가 쓱 보더라도 ‘아, 얘가 걔였지’가 돼야 해요.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면 웹소설 독자들이 헷갈려 하 시죠.
에디터: 그럼에도 소설이 역시 요망합니다. 뽀뽀를 하면 개로 변하고, 사람으로 돌아오려면 사람 여성과 하룻밤을 자야 하는. 다시 해명 을 원합니다.
천지혜: 아하(천지혜 작가는 에디터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네…. 어쨌든 로맨스 소설이란 게 판타 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서. 근데… 그쵸? 크크크
에디터: 뭐든지 스킨십으로 이어겠군요.
천지혜: 제 작품에 원래 섹시 코미디 요소가 있어요. 댓글에는 이게 암캐로 바뀌면 어떱니까.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재밌지 않았어요?
에디터: 로맨스 웹소설을 쓸 때 핵심이 뭔가요?
천지혜: 제가 가장 중점을 두는 건 감정선이에요. 로맨스 웹소설에 접속 할 땐 사랑스러운 감정을 얻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도 해주면서, 감정선도 논리적으로 짜야 하죠. 달달한 이야기여도 논 리를 제대로 짜지 않으면 독자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요. 그래서 캐릭터들에게 자꾸 말을 걸죠. 지금 기분이 어떤지, 어 떻게 행동할 것인지.
에디터: 로맨스 웹소설을 써보고 싶어 하는 독자가 있을 테고, 그런 사람 중엔 연애라곤 한 번도 안 해본 이들도 있는데. 모쏠이어도 로맨 스 쓸 수 있다? 없다?
천지혜: 있다. 상상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모쏠이 로맨스를 더 잘 쓴다는 풍문도 있어요.
에디터: 왜 그런가요? 천지혜: 더 대상화된 남주인공. 연애를 겪지 않은 깊은 슬픔. 흑역사가 없기에 사랑의 아름다운 면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겠죠? 판타 지를 충족시켜주는 장르니까. 그런 풍문이 있습니다!
에디터: 원래 프레인이란 홍보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어 떻게 웹소설을 쓰게 되었나요?
천지혜: 이야기가 좀 긴데요. 어디서부터 말하지?
에디터: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전 오늘 시간이 많아서.
천지혜: 아, 네… 대학교 3년간은 대외활동과 공모전을 열심히 했어요. 공모전 카페도 만들어 운영했고요. ‘공모전의 여왕’이었죠. 그런 경험 덕에 대학교 3학년 때 홍보회사 프레인에 입사하게 됐어 요. 1년 정도 학업이랑 회사 생활을 함께 했고, 그다음엔 웨딩 마케터이자 웨딩 스타일리스트로도 좀 일했고요. 휴학도 없이 그렇게 쭉 달렸더니 번아웃이 빨리 왔어요.
에디터: 홍보 일이 힘든 걸로도 유명하니까.
천지혜: 진짜 북한 여군처럼 일했거든요. 26살에 탈진이 왔고, 진짜 아 무것도 못 하겠는 거예요. 휴양차 제주도로 떠났죠. 에디터: ‘창작의 꿈을 불태워 보자’ 이런 마음으로 제주로 간 것?
천지혜: 전혀 아니고요. 죄송해요.(웃음) 그냥 좀 쉬는 타임이구나, 하는 정도. 다시 마케팅 홍보로 재취업을 생각했어요.
에디터: 그런데….
천지혜: 그런데 제가 머무는 숙소와 도서관이 가깝더라고요. 책 읽을 환 경이 너무 좋아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그때 네이버가 웹 소설을 처음 시작하면서 웹소설 공모전을 하더라고요. 아까 말 했듯 제가 공모전의 여왕이잖아요. 이것도 공모전의 일종이니까 한번 해보자 해서 습작 3편을 써서 냈지요.
에디터: 그게 당선이 됐다?
천지혜: 아뇨. 떨어졌어요.
에디터: 그런데….
천지혜: 웹툰으로 치면 ‘도전 만화’처럼 웹소설을 연재할 수 있는 ‘챌 린지 리그’란 게 있어요. 거기 뽑혀서 네이버에 정식으로 웹 소설을 연재하게 됐죠. 글 쓴 지 한 달 만에 기회가 와서 신 기했어요.
에디터: 정리를 좀 해볼게요. 일 하다가 번아웃이 왔다. 휴양 차 제주도에 갔다. 책 읽고 지내던 어느 날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 광고가 떴다. 소설은 한 번도 안 써봤지만, 공모전은 잘 하니까 소설을 내봤더니 네이버 연재소설로 승격이 되어서 웹소설 작가가 되었다. 그냥 능력자였다는 거군요. 독자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천지혜: 그… 그렇죠. 근데 어…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는데요. 어떻게 말 하지. 포장이 안 되네요.
에디터: 사실대로 말하세요. 어릴 적 팬픽 좀 쓰셨죠?
천지혜: 친구들이 돌려 읽는 걸 접해본 정도? 한 줄도 써본적은 없어요.
에디터: 대학생 때 책을 많이 읽었나요?
천지혜: 남들만큼?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할 게 많아 바빠서.
에디터: 네… 중간에 드라마 기획피디로 일 하시다가 다시 전업작가로 바꾸셨죠?
천지혜: 제 꿈이 드라마 작가거든요. 웹소설 쓰면서 드라마도 한번 공부 해보자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FNC 엔터테인먼트에서 제 습작을 좋게 보시고 일을 제안해주셨어요.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에 소설 쓰는 기간이 꽤 길었는데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더라 고요. 결국, 퇴사하고 다시 제주도로 갔어요. 네이버에 차기작 원 고를 조금 늦게 연재하게 되었죠.
에디터: 주변 사람 중에도 그냥 작가 하기엔 불안하니까 취업해서 회사를 다니면서 써보자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래도 힘들까요?
천지혜: 그런 과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직장 다니며 글 쓰다가 ‘정 말 나한테 시간만 있으면 잘 쓸 것 같아’ 이런 마음이 들면 결단을 내 리면 되지 않을까요? 시간이 많아도 안 쓸 수 있잖아요. 시작은 했는 데 완결은 도저히 못 내겠다 이럴 수도 있고요. 미리 테스트 기간을 거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에디터: 작가님은 단행본도 나왔고, 금혼령이 드라마화도 진행 중이죠?
천지혜: 네. 판권이 팔렸어요. 모 드라마 제작사 쪽에서 좋게 봐주셔서 그렇게 되었어요. 웹소설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 드라마 추진 작 업을 열심히 하고 있지요. 투잡을 하고 있습니다.
에디터: 그러면 속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웹소설을 쓰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나요?
천지혜: 음… 그것에 대해선 정말 많은 이야기가 필요해요. 일단 전 네이버라는 정식 연재처가 있기 때문에 월 고료를 받아요. 판매분에 대해서는 어떤 비율로 돈을 받고요. 안정성이란 건 무시 못해요. 그렇게 보장이 된다면 작가도 너무 배고프지만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에디터: 네이버는 돈을 잘 주는가요? 천지혜: (힘찬 목소리로)아! 네이버 괜찮습니다. 작품을 1년 하면 1년 동 안 고정 수익이 들어오는 게 작가에게 어딥니까. 하지만 작년엔 네이버에 너무 통과가 안 되서 저도 힘들었는데, 다른 분들에게 넌 버텨봐라 할 순 없고요. 전체적으로 보면 작가가 된 건 행복 한 선택이었어요. 에디터: 평균 따지면 직장 다닐 때 월급보다 낫나요?
천지혜: 음… 행복하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게 축복 이니까요. 제 주변 웹소설 작가분들을 보면 억대 연봉인 분들도 있고 정말 작게 버는 분들도 있죠. 전 그 사이에서 막 왔다갔다 하는 중이고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자기 안에 창작력이 있는 분 중에 이런 일희일비를 견딜 수 있는 분이라면 작가를 해볼 만 할 것 같다,입니다. 그런데 저라고 일희일비를 극복했는가! 극복 하지 못했습니다. 돈이 0원이 들어오면 괴롭고, 많이 들어올 땐 행복하죠.
에디터: 그래도 대학생들에게 추천하시나요?
천지혜: 웹소설 시장이 커지고 있어요. 게다가 작가는 얼굴, 나이, 스펙, 학벌 보지 않죠. 심지어 멀리 살아도 됩니다. 운이 정말 럭키럭키해야 되는 일이긴 하지만요. 대학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 너무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지 말고 써보는 걸 추천합니다. 에디터: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웹소설 작가를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까요? 천지혜: 그럴 것 같아요. 드라마 16화와 웹소설 100화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웹소설을 쓰면서 내가 어떤 단점이 있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심리를 볼 수 있기도 하고요.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예행연습 삼아 웹소설을 써볼 수도 있겠어요.
에디터: 마지막 질문. 평생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천지혜: 길을 찾아갈 에너지가 계속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웹소설 작가 든 드라마 작가든 문이 어지간지 좁습니다. 얼마나 좌절하기 쉽 겠어요. 정답이란 게 없는 창작계에선 길 찾는 것까지 노력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