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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Mar 09. 2017

지나친 알바는 왜 평생 고생이 되는가

알바하는 학생인지, 공부도 하는 노동자인지

“내가 알바하는 학생인지, 공부도 하는 노동자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페이스북 페이지 ‘OO대학교 대나무숲’에서 봤던 글이다. 아르바이트를 2~3개씩 하며 수업 듣는 어느 대학생의 푸념이었다. 댓글 반응은 별거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자조 섞인 불만이 다수였다. 하지만 이 문장은 뭔가 잘못됐다는 찜찜함으로 마음에 남았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일상이다.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모든 비용이 오른 탓이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들도 꽤 있나 보더라고.” 회사 인턴에게 말했더니, 그 인턴도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을 다친 적이 있다기에 무안했다. 한 번은 글 쓰는 직업을 꿈꾸는 대학생이 찾아왔기에 잡지사 어시스트를 권했으나 당장은 생활비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커버가 되지만,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씩씩한 표정이어서 더 미안했다.
 
주간 평균 20시간, 공부하며 알바한다


도대체 대학생들은 일주일에 얼마만큼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걸까? 팩트를 알고자 지난 2월 24일 모바일 설문조사 서비스 오픈 서베이를 이용해 20대 대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돌렸다. 400명 중에 지난 학기, 수업을 들으며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대학생은 53.5%였다. 휴학생 등은 제외한 수치다. 그리고 이들의 매주 노동시간은 평균 20.02시간이었다.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20시간 넘게? 너무 높게 나온 게 아닌가 싶어 주변 대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모두들 20시간은 평균이라며 끄덕였다. 40시간 넘게 일했다는 대학생이 11%나 나온 건 충격이었다. 잘못 답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이해가 힘들다. OECD 국가 평균 근로시간이 대략 주당 33시간이다. 우리나라 대학생 일부는 다른 나라 전업 노동자보다 더 오래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이야기다.
학교 강의 시간이 20시간이 안 될 텐데 이러면 진짜 노동하는 학생인지, 공부도 하는 노동자인지 헷갈릴 판이다.


“아르바이트 탓에 직무 경험 포기했다” 52.3%


아르바이트가 진로 준비엔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까? 아르바이트 탓에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는 46.5%가 보통, 35.1%가 그렇다고 답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수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다음 질문이었다. 아르바이트하느라 인턴, 대외활동 등 원하는 직무 경험을 못 했느냐는 질문엔 그렇다는 사람이 39.7%, 매우 그렇다는 이가 12.6%였다. 반수가 넘는 대학생이 아르바이트 탓에 해보고 싶은 직무 경험을 단념했다고 답한 셈이다. 그렇지 않다는 대학생은 고작 19.6%였다.
 
젊었을 적 고생이 평생 고생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요즘 기업들은 학점보다 지원자의 경험을 주의 깊게 살핀다. 나 역시 몇몇 입사 시험에서 심사관 역할을 하며 직무 경험을 주로 봤다. 예컨대 콘텐츠 마케팅 직무에 지원했으면, 홍보사나 마케팅 회사에서 콘텐츠 만드는 인턴을 해본 걸 높게 친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해본 것도 이점이다. 경험이 직무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다고 여겨서다. 경험 있는 사람이 실무 감각이 높다는 판단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기업들이 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는, 열정을 드러낼 직무 스펙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며칠 전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여럿 하는 후배와 저녁을 먹었다. 후배가 말했다. “아르바이트 많이 한 건 마이너스더라고요. 오히려 막 살았다고 생각해요. 친한 교수님들도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취업 준비에 집중하라고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그럴 순 없고요.” 이 후배가 한 일은 전화 상담원, 마트 판매원 등 성실과 친절을 바탕으로 한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다. 아르바이트 경력이 도움된 건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을 때뿐. 정작 바라는 언론사 취업에는 별 소용없었다고 한다. ‘당장 돈이 꽂히는’ 아르바이트를 거부하기 힘든 후배는 ‘프리터’의 삶에 익숙해지지 않을지 걱정했다.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은 될 수 있지만


“내가 여섯 살 먹은 아이를 노동시장으로 몰아넣는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 돈을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 수술 전문의나 핵 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장하준 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개발도상국 산업을 보호 해야 한다는 취지로 든 예시지만, 대학생 노동 문제에 적용해도 걸맞은 비유다.
 
세상에 도움되지 않는 경험은 없다. 마트 아르바이트 경험이 유통업 전문가로 근무할 때 도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모두 기업이 요구하는 어떤 전문성과 어우러졌을 때 이야기다. 적어도 정규직 취업이란 문턱을 넘었을 때 주어질 기회다. 당장의 생활비를 버느라 대학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경험마저 포기했을 때는 주어지지 않을 그 기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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