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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Jun 01. 2017

너도 불행 나도 불행 에브리바디 불행

남 행복한 꼴을 못 보는 인간의 본성이 모두를 힘들게 만든다 

얼마 전 내가 쓴 인터뷰 기사가 ‘네이버 경제M’ 메인에 떴다. <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라는 블로그의 운영자인 위선임과 김멋지. 두 분은 쳇바퀴 도는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2년여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직접 번 돈으로 여행했고, 경비가 떨어져 호주의 딸기 패킹 공장에선 8개월간 일했다. 불편함으로 점철된 여행이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진심으로 즐겼으며, 귀국 후엔 배운 경험과 익힌 기술로 재밌는 일을 벌이며 사는 유쾌한 분들이다. ‘취준-야근-결혼-육아’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고픈 이들에게 가능성을 제안하는 인터뷰가 되길 바랐고, 기사도 잘 나왔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네이버라… ‘댓망진창’이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남자도 저렇게 20대 때 안정적인 직장 버리고 돈 안 모으고 몇 년 동안 해외여행 다니면서 재미있게 살면 진취적이고 쿨한 남성 취급 해주는 것 맞죠?”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결국 베짱이는 나중에 개미의 신세를 져야만 했다는….”


“공장 노동이 어때서? 아직 고생을 덜 해봤네! 더 솔직한 얘기들이 있을 법한데, 사람들한테 보일 수 있는 것들만 쓴 건 아닌지? 책 같은 것 써서 편하게 먹고살 궁리하지 말고 좀 더 인생의 심연으로 여행해보라.”


아… 좌절스럽기 그지없다. 우선 ‘책 같은 것’ 써서 편히 먹고사는 글쟁이 거의 없다. 독자들에게 감히 조언컨대 먹고사는 문제가 편하길 바라면 정규직 월급쟁이를 절대 포기하지 마라.


남성 차별은 또 왜 나오는지. 남자 역시 20대 때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해도 된다. 이 댓글러는 돈 모아놓지 않으면 여성들이 자기를 좋게 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은데, 본인이 편협하게 살며 다른 매력을 키우지 않아 인기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공장 노동이 어때서? 비정규직 비숙련 노동은 대부분 노동 강도는 높고, 벌이는 적다. 고생을 얼마나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다행히 인터뷰이들에 대한 옹호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선플과 악플은 대략 3:1 비율로 정리됐다. 악플은 ‘진압’됐으나 찜찜함은 남았다. 만약 인터뷰에 고생한 이야기를 넣지 않았다면 악플 대잔치를 피할 수 있었을까. 이들이 질시 어린 욕을 먹을 만큼 대단한 호사를 누린 것인가.


이런 악플은 흔하디흔하다. 월급 200만원이 부족하다는 글 밑엔 “200만원이 뭐가 적으냐. 배가 불렀네.” 공무원부터 정시 퇴근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기사 밑엔 “공무원 XX들이나 칼퇴 할 수 있지. 우리 같은 서민들은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 댓글 다는 이들이 유독 이상한 사람들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우리 마음속 날것의 심리를 반영했을 거로 생각한다.


독일에서 유래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란 용어가 있다. 피해를 뜻하는 독일어 ‘샤덴(Schaden)’과 기쁨이라는 뜻을 담은 ‘프로이데(freude)’의 합성어로 무려 ‘타인이 불행할 때 느끼는 기쁨’이란 뜻이다. 무시무시하다. 사이코패스의 심리 상태인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주 일반적인 감정이다.


일본 교토 대학교 의학대학원엔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게 분명한 다카하시 히데히코 교수란 사람이 있다. 이 교수는 2009년 2월「사 이언스」 지에 샤덴프로이데 현상을 실험한 결과를 발표했다.


실험 방법은 다음과 같다. 20대 남녀 19명에게 스스로 주인공이라고 여기며 시나리오를 읽게끔 했다. 2가지 방법으로 실험 참가자들의 감정을 측정한다.

1) 다 읽은 후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부러운지도 6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기기.

2) 글 읽는 동안 참가자들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


시나리오엔 총 4명의 대학 동창생이 나온다. 이해가 쉽도록 가칭을 붙이면 주인공은 ‘평범이’다. 이름처럼 경제력, 외모, 능력 모든 면에서 평범하다. 평범이와 같은 전공, 같은 동아리, 미래 꿈도 비슷한 ‘비슷잘난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주인공과 전공 등 모두 다른 ‘다른잘난이’, 주인공처럼 평범하지만 전공, 동아리 등 모두 다른 ‘다른평범이’.


평범이, 비슷잘난이, 다른잘난이, 다른평범이 4명은 함께 대학 생활을 하고, 사회에 진출하고 동창으로 가까이 지낸다. 글을 다 읽은 후 참가자들에게 다른 캐릭터 3명에게 질투 느낀 정도를 점수로 매기도록 했다. 전혀 부럽지 않은 게 1점. 가장 부러운 게 6점이다. 결과는? 여러분이 예상한 대로일 테다.


비슷잘난이 4점, 다른잘난이 2점, 다른평범이 1점이다. fMRI로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 부분을 촬영한 결과도 같은 순서였다. 자기하고 비슷한 사람이 잘될 때 더 질투를 느낀다는 결과다. 덧붙이면, 시나리오에서 다른 캐릭터들이 시험 커닝을 하다가 걸린다든가, 연인이 바람피워 고통 받을 때마다 참가자들의 뇌는 기쁨을 느꼈다. 비슷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다카하시 교수의 실험은 우리가 비슷한 이들의 작은 행복에 유독 시기심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된다고 할 땐 다른 비정규직이 분노하고, 회사원 중 일부가 야근 안 하게 됐을 때 가장 싫어하는 건 사장님이 아니라 야근에 고통 받는 다른 직원들이다. ‘나는 불행하다 고로 너도 불행한 상태로 있어야 내가 더 기분 나쁘지 않다.’ 이런 불행 평등이 평범한 우리 모두를 계속 힘들도록 만든다.


P.S. 불행 평등으로 이익 얻는 X은 누구?

「‘우리도 정규직으로’ ‘안 해주면 파업’… 봇물 터진 비정규직.」

얼마 전 모 신문사가 이런 제목의 기사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후 일이다. 기사가 전한 풍경은 살벌하다. “으흐흐 이놈들 나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시지. 아니면 혼내주겠어!” 이런 정도의 톤이다.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사들처럼 정규직으로 고용해달라는 주장도 담았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간호협회 측은 “간호사들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간호조무사만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행 평등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기사다.


간호조무사들은 간호사 대우해 달라는 게 아니라, 정규직으로 근무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간호사도 간호조무사도 근무 형태상 모두 정규직으로 일하는 게 타당하다. 참고로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정규직이다. 그리고 몽땅 비정규직이서 이익 볼 사람 역시 평범한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높으신 분들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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