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나라의 학교 수업시간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국민들의 영어 실력은 우리보다 월등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요?
‘Use it or lose it(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뇌는 쓰지 않는 언어는 금방 잊어버리도록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열심히 가르쳐도 습득되지 않는 이유는 사용하지 않는 의미 없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조기 영어 교육과 관련된 모든 연구 결과는 미국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이 유리할까?’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연히 나이가 어릴수록 좋다는 결론이 나오겠죠. 평생 영어를 모국어로 쓰며 살아야 하니까요. 그들에게는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은 완전히 다릅니다. 살면서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우리는 환경 조건이 전혀 다른 연구 결과를 잘못 해석해서 자녀들에게 조기 영어 교육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인위적인 환경에서 외국어를 배울 경우 어린 아이보다 성인이 더 빨리 배울 수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영어를 잘할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는 나이가 어릴수록 유리하겠지만, 영어를 전혀 쓰지 않는 환경에서는 인지능력이 뛰어난 성인이 더 집중력 있게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학교와 같은 인위적인 환경에서 영어를 배울 때는 어린이보다 이해력이 좋은 성인이 더 빨리 더 배운다는 실험결과도 있습니다.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환경에서는 배우는 시기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쓰지 않는 환경에서는 모국어가 충분히 완성된 다음에 시작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배운 영어는 대부분 쓰지 않기 때문에 뇌에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영어 배우는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이 높은 실력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뇌의 발달과정을 무시한 조기 영어 교육은 여러 가지 정서장애와 같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조기 영어 교육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크게 없는데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기 교육이 아니라 뇌의 발달에 맞는 적기 교육입니다. 초등학생 시기 영어 교육의 목표는 높은 수준이 아니라 영어에 대한 흥미와 동기를 유발하고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말할 때 ‘학교에서 10년 동안 영어를 배웠는데 말 한마디 못 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10년이라는 기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시간은 평균 730시간 정도 됩니다. 730시간을 24시간으로 나누면 30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루에 8시간씩 해도 9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입시를 위한 시험공부만 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배운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 교육은 전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어권 국가와 우리나라는 언어 환경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영어를 잘 하던 사람도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한국어만 쓰면 영어 능력이 점점 줄어듭니다. 쓰지 않는 기능은 퇴화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수업의 형태로 하는 언어 교육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유일하다면 언어발달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언어학자 ‘벤 리어’의 말입니다. 언어가 습득이 되려면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그 언어에 노출되거나 사용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명한 영어 교육학자 ‘제레미 하머’도 “교사가 아무리 영어를 잘 가르쳐도 학교 교육만으로는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어 교수법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니나 스파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인이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한국에서도 필요한 영어를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 학교 학생들의 목표가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모국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경우라면, 외국어 교육을 늦게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따라서 영어 교육은 모국어가 어느 정도 완성된 초등학생 시기에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최근 연예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는 외국인은 스무 살이 넘어서 한국에 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배워서 잘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충분이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필요한 것은 어린 나이가 아니라 충분한 동기입니다. 배워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한 노력을 할 테니까요.
학부모들이 조기 영어 교육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요? 영어공부에 실패한 자신의 경험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배우지 않아서 영어를 못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오해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영어를 배우고도 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 영어 교육의 목표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까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우리의 환경에서 영어를 일상적으로 쓰는 사람들과 동등한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가’입니다. 막연히 이상적인 목표는 불필요한 지출이나 낭비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각자의 상황이나 필요에 맞는 현실적인 수준이 필요합니다. 저도 제가 원하는 분야에 대한 영어 능력 습득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더라도 모든 종목의 운동을 수준급으로 잘할 수는 없습니다.
초등학교 시기 영어 교육의 목표는 ‘높은 수준의 영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어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고 자발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한 가지 환경에서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습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영어는 우리가 일상어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아이들의 뇌는 두 가지 언어 중에서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언어는 최선을 다해서 버릴 것입니다. 뇌의 입장에서는 영어가 불필요한 거니까요. 따라서, 나에게 필요한 영어를 배워야 뇌가 생각을 바꿉니다.
‘학교에서 잘 못 가르쳐서 영어를 못한다’ 또는 ‘어려서부터 배우지 않아서 영어를 못한다’라는 것이 영어를 못하는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학교에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영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에 대한 노력을 소홀히 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영어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때부터 원하는 영어 실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어가 필요한가요? 각자의 목적에 맞는 영어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용할 영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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