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마 멍멍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by 오늘

바둥이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강아지에 대해 처음 공부하면서 알게 된 정보 중 하나는 강아지의 수명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적혀있던 강아지의 수명은 평균 12살 정도였고, 오래 살면 15살 정도라고 했다. 12년? 12년 뒤면 중학생인 내가 대학교도 졸업했을 때잖아. 스크롤을 내려 바로 다음 파트로 넘어갔었다.


그런데 바둥이에게 매일같이 물리고, 수많은 탈출을 막고, 산책을 하느라 길치인 내가 우리 집에서 안양천으로 가는 모든 길을 마스터하는 동안 감도 안 오던 그 시간이 어느덧 잘도 가버렸다. 바둥이는 고맙게도 오랜 시간 동안 너무 건강하게 잘 지내주었지만 결국에는 우주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늙어 버렸다.


바둥이는 특히 귀에 염증이 자주 생겼었다. 그래서 그런가 14살쯤부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더니 어느 날부터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귀가 완전히 안 들리고 나자 바둥이 못생겼어~ 하고 놀리면 훽 돌아보며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던 모습은 더 이상 못 보게 됐다. 가족들의 발소리만 듣고 벌떡 일어서던 우리 멍멍이는 이제 누가 오든 말든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래도 발이나 엉덩이 부분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깨운 뒤 내가 돌아왔음을 알려주면, 바둥이는 게슴츠레 눈을 떠보고는 누운 채로 꼬리라도 흔들어서 꼭 반겨 주었다.


어느 날부터는 눈동자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산책길에 당당하게 걸어가다가 작은 돌부리에 걸려 휘청하거나 하수구에 발이 빠지는 일이 더러 생겼다. 가족들과 체형이나 옷차림이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면 무작정 꼬리를 치며 달려가는 일도 생겼다. 우리는 산책길에 바둥이가 위험하지 않도록 리드줄을 점점 더 바짝 잡게 되었다.


또 어느 날부터는 다리를 약간씩 절뚝이는 일이 잦아졌다. 걸음도 느려졌다. 두 시간도 거뜬하던 산책은 삼십 분 내외로 줄었다. 예전에 비해 반도 못 갔는데 바둥이는 걷다가 자꾸만 되돌아와서 내 다리를 긁었다. 안아달라는 거다. 그러면 나는 나의 늙은 개를 기꺼이 사랑스럽게 안아 들고 조금 쉬거나 아니면 집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래도 목욕을 할 때에는 여전히 팔팔하게 버둥거렸고, 목욕 후에는 젊은 시절처럼 길길이 날뛰며 분노를 표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는 밤에 자다가 자꾸 깨서 집안을 타닥타닥 돌아다녔다. 산책을 하는데 앞으로 계속 가지를 않고 빙빙 큰 원을 돌듯이 걸었다. 맨땅에서도 다리를 헛디딘 것처럼 비틀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 모든 증상은 강아지 치매를 가리키고 있었다.


단지 조금 힘이 없고 성격이 조금 더 포악해졌을 뿐 아직도 아기 같기만 한 우리 개는 명백히 늙어버렸고, 서글프게도 점점 더 늙어가고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을 대비해야 할 때가 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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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어느 날의 일기>


귀 소독을 하러 동물병원을 간 김에 산책할 때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증상에 대해 물어봤더니 치매가 맞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금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도 전문가의 입으로 그렇단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마음이 쿵 내려앉은 뒤 점차 먹먹해왔다.


터지려는 울음을 애써 참고 무얼 하면 좋겠냐 물었더니 항산화제를 먹는 게 증상을 늦출 수도 있다 하여 비싼 약을 덜컥 사서 병원을 나왔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바둥이는 산책을 길게 하지 못했고, 같은 자리를 몇 번 돌았고, 그래도 때때로 뭔가 발견한 듯 힘차게 걷기도 했다. 해가 지고 있어 두꺼운 패딩을 입었는데도 날이 몹시 추웠고, 추운 만큼 공기가 맑아서 초승달이 깨끗하게 예뻤다.


집에 와서 동생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나서 잠시 함께 울적해하다가 바둥이 약을 정리하는데 아직 다 먹지 못한 강아지용 루테인과 안약이 눈에 띄었다. 별별 약이 다 나오는 게 진짜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강아지는 사람에 비해 이렇게도 오래 살지 못하는지 잠시 괜히 한탄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지 않은 순간을 상상하며 슬퍼하기보단 지금 이 순간 함께 행복해야지 또 다짐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자 같은 설명을 또 해야 했고, 엄마는 붉어진 눈시울이 민망한지 괜히 바둥이 약 포장지에 쓰인 글씨를 읽어보다가 "육만사천원이네. 비싸다" 했다.

약은 육만 육천원이었고, 가격표 인쇄가 깔끔하지 못해 6자의 밑부분이 약간 뚫려있는 것을 노안이 온 엄마는 4자로 봤다. 늙어가는 한 명의 여성과 한 마리의 암컷을 바라보며 우리는 진심으로 낄낄 웃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주 헥헥대던, 하지만 너무 예뻐 동안 바둥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