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못 하지 다 통한다
낑낑대거나 짖거나 꼬리가 말려들어가 있으면 불편하거나 싫은 것, 귀가 쫑긋 서고(바둥이는 원래 서 있긴 한데 더 쫑긋 설 때가 있었다) 꼬리를 흔들고 와다다다 뛰어다니는 것은 좋거나 신난 것, 배를 까고 누워있으면 편안한 것, 몸을 잔뜩 웅크리고 떨고 있으면 아프거나 무서운 것,... 처음에는 개의 행동 패턴을 공부해 가며 바둥이의 몸짓을 우리가 이해해야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똑똑한 멍멍이는 인간들의 공부 속도가 영 답답했는지 인간에게 통하는 법을 스스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겨울철의 우리 집 온도는 약간 추운 편이어서 바둥이도 이불 안으로 들어와 잠자는 것을 즐겼다. 엄마나 내 품에 들어와 자곤 했는데,(동생은 서열상 같이 잘 정도는 아니었던 듯하다) 누구와 잘지는 바둥이가 직접 정했다. 선택한 사람이 자려고 누우면 그 옆으로 가서 가슴께의 이불을 긁으며 애처로운 표정을 하고 낑낑 귀여운 소리를 내는 거다. 엄마나 나는 그 모습에 사르르 녹아 대개 거절 없이 이불을 열어 주었고 그러면 바둥이는 이불속으로 들어와 한 바퀴 둥글게 돌면서 엉덩이부터 털썩 앉아서 몸통, 앞발 순으로 납작하게 몸을 뉘인 뒤 마지막으로 머리를 내려놓으면 내 팔이 딱 바둥이 베개가 됐다. 그 뒤 몇 번 꿈찔거리며 자세를 다시 잡다가 휘유우우우 한숨을 쉬면서 온몸에 힘을 빼면 자세 세팅이 끝났다는 거다. 그 적당한 묵직함과 따뜻함에 나도 잠이 솔솔 오곤 했다.
바둥이는 식탐이 강해서 자율급식을 할 수가 없었다. 사료를 얼마를 부어놓든 간에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다리를 구부려 앉을 수가 없어서 계속 서서 돌아다니며 헉헉거리다가 결국 이불 위에서 옆으로 휙 쓰러지듯 누워버리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정해진 시간에 일정량 사료를 주었고, 물은 떨어질 때마다 채워주었다. 바둥이는 거의 언제나 밥을 다 먹고도 더 먹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입맛을 오래도록 다시면서 밥그릇 앞에 앉아있는 것으로 소극적인 표현을 했지만,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점점 더 크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빈 밥그릇 안을 앞발로 이리저리 치면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났다. 플라스틱 밥그릇에서 스테인리스 밥그릇으로 바꾸자 땡그랑땡그랑 소리가 났다. 우리가 끝까지 모른 척하면 밥그릇을 냅다 엎어버리고는 포기하고 자기 방석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런데 바둥이가 12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하면서 바둥이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수의사 선생님이 종합 소견을 말해주신 뒤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제 생각엔 얘가 오래 살 것 같은데, 살을 빼지 않으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그때 바둥이의 체중은 11킬로 정도였고, 바둥이가 건강하게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목표는 9킬로 이하였다. 바둥이 견생 처음으로 혹독한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맛이 없어진 다이어트 사료는 둘째치고 급격하게 줄어든 밥 양에 바둥이는 어안이 벙벙한지 하루 종일 밥그릇을 긁었다. 땡그랑달그락땡그랑땡팽그르르르르 하는 소리가 집안을 하루 종일 울렸다. 밤에 자다가도 배가 고팠는지 일어나서 밥그릇을 긁어대자 잠귀가 밝은 내가 결국 일어나 사료 열다섯 알 정도를 세어 밥그릇에 놓아주었다. 불쌍한 바둥이는 그거라도 감지덕지로 허겁지겁 먹고는 다시 잠을 잤다.
그렇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바둥이의 한밤중 밥 내놔 시위는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바둥이에게 밥을 원하는 만큼 줄 수는 없었다. 우리는 건강한 바둥이와 오래 함께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결국엔, 바둥이 밥그릇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쓰며 잠귀가 밝은 내가 매일 새벽 시위마다 일어나 밥 열 알을 야식으로 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바둥이는 이제 내가 자기 새벽간식을 주는 사람인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어느 날에는 누군가 이마를 두드려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내 머리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바둥이 얼굴.. 화들짝. 뭐야 꿈인가. 그러기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너무 귀엽고도 조금은 무서운 장면. 내가 눈을 뜨자 바둥이가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소리로 낑낑거렸다.
인간아 새벽간식 내놔.
그날부터 바둥이는 새벽간식을 얻어먹기 위해 밥그릇을 치기도 했지만 내 머리를 치기도 했다. 더 빠르고 정확한 소통법을 찾아낸 것이다. 강아지에게 이마를 맞는 감촉은 몇 십 번이 반복돼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나는 매번 화들짝 깨서 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끼리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우리를 쳐다보고 힝 인지 낑 인지 잘 모르겠는 애처로운 소리를 내서 꼭 한 두 입씩 얻어먹는 데 성공하곤 했다. 그렇지만 도저히 줄 것 같지 않으면 조르는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뒤에서 노리다가 어느 순간 사냥을 했다.
바둥이는 모든 개들이 그런 만큼 정말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개였다. 그래서 사실 바둥이가 가장 잘하는 표현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집에 하루 만에 다시 들어와도, 한 달 만에 다시 들어와도, 바둥이는 내가 십 년 만에 들어온 것처럼 반겨주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며 다리를 긁고 온 얼굴을 핥으며 반가워한 뒤에는 꼼짝 않고 내 앞에 앉아 자신을 만지라고 내 손을 긁어댔다. 장난을 치느라 손을 가만히 바닥에 두고 있으면 내 손 위에 둔 자신의 손에 발톱을 살짝 세우며 귀여운(?) 협박을 하기도 했다. 내 심한 장난에 나를 심하게 물었다가도 자기가 더 놀라서 입을 바로 확 벌리고는 문 자리를 여러 번 더 핥아주었다. 미안하다는 표현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하루는 동생이 심하게 아팠던 날, 바둥이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생 곁에서 잠을 잤다. 그 뒤로 동생이 아무리 꾀병을 부려봐도 다시 그런 일은 없었다.
정말이지 입으로 내뱉지 못할 뿐 바둥이가 못 하는 표현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바둥이만의 표현이 인간의 언어보다 훨씬 멋지다고 생각될 때도 많았다. 바둥이는 거짓말은 절대 못 했고, 어떤 위협이 앞에 있더라도 언제나 용감하게 솔직한 개였다. 개들은 말을 할 필요가 굳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언어가 없더라도 얼마나 깊이 통할 수 있는지, 나는 바둥이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