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훌륭하다
바둥이가 자라면서, 이 강아지가 결코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모습이든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상상하고 바라던 반려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바둥이는 같은 개들 사이에서도 사회성이 없는 편이었다. 산책 중에 다른 개들이 그냥 옆으로 지나갈 때에도 난데없이 화다닥 달려들려 할 때도 있고, 거슬리게 하면 뭐, 당연히 이빨을 보이며 가차 없이 달려들었다. 나는 주변에 개가 지나갈 때면 늘 긴장하고 있다가 바둥이가 흥분할 때마다 얼른 리드줄을 바짝 당겨 붙잡으며 진땀을 뺐다.
다행히 사람에게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람에게도 마냥 우호적으로 굴지만은 않았다. 나와 동생은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바둥이에게 크고 작게 물렸는데, 따지고 보면 원인 제공은 우리가 하긴 했었다. 우리는 바둥이가 싫다는데도 머리털을 부비며 장난을 치거나 꼭 붙잡고 놔주지 않거나 먹을 것을 가지고 약을 올렸다. 그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가 없었던 건데, 바둥이는 그래도 대개는 어느 선까지는 이빨을 보이며 으르릉거려서 경고를 표하다가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물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잘못했네. 그렇다고 건들지만 않으면 절대 안 무는 건 아니고, 어떨 때는 경고 없이 이빨을 박아버릴 때도 있었으므로 바둥이 또한 성격이 별로 좋지는 않았던 게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바둥이의 성격이 우리에게 더러운(?) 건 별로 상관하지 않았지만, 다른 개나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할까봐는 늘 걱정하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고등학생이었으니 바둥이는 2~3살이었던 것 같다. 함께 김장을 하려고 막내삼촌네 가족이 집에 왔다.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기 사촌동생도 함께. 아기가 집에 놀러 오다니, 나는 그 무렵 아기를 무척 좋아했었지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바둥이와 아기의 공존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 가족은 고민 끝에 그 어느 때보다 바둥이를 잘 간수하자고 만반의 각오를 했다.
의외로 막내삼촌네 가족이 오자 바둥이는 소파 밑이나 침대 밑으로 숨어버렸다. 낯선 사람들이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여차하면 바둥이를 방 한 군데에 가두려 했는데, 바둥이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기였다.
호기심이 가득하고, 인생에서 가장 용맹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아기가 소파 밑에 숨어 있던 바둥이를 발견해 버린 것이다. 아기는 바둥이 엉덩이가 눈에 띌 때마다 바둥이를 향해 뒤뚱뒤뚱하면서도 생각보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고, 지체 없이 손을 뻗어 만지려고 했다. 우리는 아기를 말리고 바둥이를 분리하느라 한동안 애를 먹었다.
그래도 어느 순간, 아기도 강아지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조금 누그러진 듯하고 바둥이도 소파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건지 꿈쩍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상황이 안정됐다고 생각한 우리 가족은 김장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바둥이와 아기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소 긴장이 풀어진 그때쯤 언제나 그렇듯 사건이 일어났다. 아기가 어느새 소파 밑에 숨어 있던 바둥이의 꼬리를 훽 잡아당긴 것이다. 자기 몸무게만 한 강아지를 그렇게까지 잡아당길 힘이 어디서 났는지, 바둥이는 그대로 소파 앞쪽까지 딸려 나왔다.
그 순간 집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우리 모두 입이 벌어졌고, 누군가는 “바둥아, 안 돼!” 하고 외쳤다. 나는 차마 그 장면을 못 볼 것 같았다. 그런데 바둥이가 퍼덕거리며 일어나더니 다시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분명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다. 입질 한 번 하지 않았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바둥이가 그러는 건 정말 처음 봤기 때문이다. 아예 물기는커녕 공격할 생각 자체가 전혀 없어 보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 바둥이도 긴장이 풀렸는지 소파 밑에서 슬그머니 나왔을 때 아기는 여전히 바둥이가 좋은지 계속 따라다니며 만지고, 부비고, 웃고 난리였다. 우리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바둥이를 밀착 마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둥이가 어디까지 참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해서 점점 아기가 하는 것을 그대로 둬보기도 했다.
아기는 바둥이 꼬리를 잡아당기다가 등을 만지다가 얼굴도 만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말릴 틈도 없이 바둥이의 입을 두 손으로 쫙 벌려 보기도 했다.
(이때는 또 순간 아찔.)
그런데도 바둥이는 끝끝내 단 한 번도 공격성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가 하는 대로 가만히 두거나, 싫으면 고개를 돌리거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정도였다. 평소 우리에게 보이던 그 성깔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날부로 우리는 바둥이를 약간 존경하게 됐다. 바둥이는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는 한없이 약해져 주는, 때로는 아주 관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강강약약을 실천하는 개. 바둥이는 참지 않아도 될 상대에게 참지 않아도 될 때만 참지 않는, 확실히 인간보다 나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