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했던 우리 멍멍이
대부분의 개들이 그렇듯 바둥이는 산책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바둥아 산ㅊ...' 까지만 말해도 순식간에 귀가 바짝 선 채로 벌떡 일어나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고는 리드줄이 있는 곳과 나를 반복해서 오가며 펄쩍펄쩍 뛰곤 했다. 점점 너무 심하게 흥분해서 리드줄을 채우기가 어려워지자 나중에는 산책 가자는 말 없이 일단 슬쩍 리드줄을 가슴에 채워서 나갔다. 눈치가 더 생기고는 줄 앞에서 한껏 흥분하다가도 마음을 가다듬고 타다다닥 달려와 앞발을 착 넣어주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우리 바둥이 천재인가 봐'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문을 열면 바둥이는 총알처럼 튀어나가 곧바로 어마어마한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넘어지지 않게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그래도 산책을 시작하고 처음 5분 정도의 초흥분 시기를 지나고 나면 바둥이는 금세 안정돼서 도도한 자태로, 적당한 빠르기로 참 예쁘게 잘 걸어 다녔다.
집 근처에 천이 있어서 집에서 나와서는 천변으로 갔다. 천변으로 내려가면 바둥이는 한동안 다시 신이 나서 바닥에 코를 박고 걸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기도 하고 영역 표시를 하기도 했다. 영역 표시를 한 뒤에는 주변의 흙을 발로 꼭 굴러 몇 번 튕겨냈는데 그 흙이 꼭 나한테 날아왔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행동은 약한 동물들이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간과 살았는데도 그 습성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그게 그냥 흙 차는 버릇으로만 남아서 자기 오줌이 아니라 나를 덮으려는 건 어이가 없었다. 나는 바둥이의 오줌이나 똥이 날아올까 봐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피했다가 바둥이의 뒤처리를 하곤 했다.
바둥이는 객관적으로 예쁜 강아지였다. 그래서 산책을 다니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늘 예쁘다, 귀엽다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 것도 없는데 괜히 자랑스러워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걷게 됐다. 바둥이도 자기가 예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냄새를 찾느라 코를 땅에 대고 걷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고개를 들고 마주 오는 사람들을 계속 쳐다보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지나가며 “예쁘다”, “귀엽다” 하고 말하면 그 사람을 향해 꼬리를 몇 번 흔들고, 목적을 이룬 듯 만족스럽게 다시 고개를 박은 채 걷는 거다. 예쁘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바둥이 걸음이 조금 느려지면 충분히 걸었다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바둥이는 더 산책하고 싶을 때는 집 근처에 오면 갑자기 걸음이 더 빨라지다가 그대로 다다다 하고 집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반대로 지쳤을 때는 가차 없이 자기가 알아서 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집에 오면 발을 씻겨야 했다. 바둥이는 씻는 걸 싫어했지만 밖에 나갔다 오면 발을 씻어야 하는 건 알았고, 리드줄을 끌어당기면 마지못해하는 모습으로라도 화장실로 들어와 주었다. 그리고 네 발에 거품을 내고 헹궈줄 수 있게 한 발, 한 발씩 알아서 들어주었다.
그렇게 발 씻기까지는 그런대로 협조했지만 바둥이는 목욕은 정말 정말로 싫어했다. 목욕을 시킬 때면 허우적거리며 나를 끌어안듯이 할퀴어 대곤 해서 목욕시킨 후에 나에게는 바둥이 발톱에 긁힌 상처가 한두 개씩 꼭 남았다. 목욕은 바둥이에게도 우리에게도 힘든 과정이어서 그렇게 자주 시키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같이 살려면 한 달에 한 번은 해야만 했다.
바둥이가 ‘목욕’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뒤로는 그 말을 꺼내면 귀신같이 숨거나 피해 다녔고 안으려고 하면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목욕을 뜻하는 암호를 만들게 됐다. '샤워' 나 '씻기'같은 말은 바둥이에게 금방 들켰다. 놀랍게도 '그거 하자, 그거' 조차도 간파를 당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이따가 다녀와서… 응? 그럴까?”이런 식으로 말했다. 산책 다녀와서 발 씻기는 척 데리고 들어가 바로 목욕시키자는 말이었다. 발 씻는 줄 알고 딸려 들어왔다가 목욕을 당(?)해서 어안이 벙벙할 때 얼른 해치워 버리는 거다. 물론 목욕 뒤에는 속은 것에 화가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으르렁거리며 집을 휘젓곤 했는데, 사실 그 덕에 알아서 털이 다 말랐다. (개이득)
그런데 어느 날, .. 다녀와서.. 하기로 한 뒤 리드줄을 하고 잔뜩 흥분한 바둥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선 순간 진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거다.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려울 정도의 비였고 바둥이는 귀에 염증이 잘 생겨서 비를 그렇게 많이 맞아서는 안 됐다. 그런데 바둥이는 이미 조금 튀어나가 비를 약간 맞은 상태였다. 목욕을 안 시킬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그날 바둥이한테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산책 기분도 못 내고 도로 집으로 끌려 들어와 목욕을 하게 된 거다.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을까.
평소처럼 목욕과 분풀이로 한바탕 집이 소란해진 뒤 다시 정돈되었고,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내 방으로 들어갔는데, 내 침대에 바둥이 똥이 있었다. 내 침대에다 분노의 똥을 싼 거다. 아 뭐야 김바둥!!! 하며 바둥이를 찾아 돌아다니는데, 아니, 내 침대에만 싼 게 아니었다. 내 침대에 한 덩이, 엄마 침대에 한 덩이, 동생 침대에 한 덩이. 나눠서 세 덩이를 싸 놓은 거였다. 아니 개가 괄약근을 이렇게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분노를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날 바둥이는 하나도 안 혼났다. 대신 우리는 그 뒤로 바둥이의 천재성을 설명할 때 입이 마르게 그 얘기를 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