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바둥 탈출기

다행다행

by 오늘


처음 바둥이를 데려왔을 때, 바둥이는 아직 강아지들이 필수로 해야 하는 접종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혹시라도 이 작고 약한 강아지가 무시무시한 질병에 감염되기라도 할까 봐 늘 소중하게 안고만 다녔었다. 데려온 지 한 달 반쯤 지나고 몇 차례의 강아지 접종이 끝난 뒤에야 산책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첫 산책부터 느꼈다. 이 작은 친구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다. 바둥이는 밖에 나가자 진짜 엄청 활발해졌다. 30센티미터는 될까 싶은 작은 몸에 달린 짧디 짧은 다리를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조금만 걸음을 늦추면 리드줄이 금세 팽팽해졌다.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계단을 용맹하게 뛰어오르려 하다가 몸 전체가 턱 걸려서 계단에 매달린 채 바둥거리고 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엄마는 지금도 종종 그 장면을 얘기하곤 한다.


정말 이리로 발발, 저리로 발발. 잘도 뛰어다녔다. 그런데 밖에 나가는 맛을 알아버린 건지, 어느 순간부터 바둥이는 탈출에 미쳐버렸다. 바둥이는 가족들의 발자국 소리를 모두 알아챌 수 있었고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문이 열리는 타이밍을 알았다. 도어록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대문으로 달려가 문손잡이를 할퀴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문을 연 사람의 다리 사이로 쌩 나가는 거다.


그맘때 우리 집 바로 근처에는 등산로가 있었다. 그래서 늘 등산지팡이를 짚은 사람들이 오갔다. 바둥이는 그중 아저씨들만 보면 미친 듯이 짖었다. 그 덕분(?)에 바둥이를 금방 찾아올 수 있었지만 매번 아주 곤란하고 미안한 상황이 펼쳐졌다. 바둥이가 조금만 크고 험하게 생겼더라면 어땠을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아찔할 때도 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우리에게 오기 전 바둥이가 살던 집에서 주인아저씨가 훈육을 명목으로 막대기로 강아지들을 위협했던 것 같다.)


다행히 어느 순간부터는 바둥이의 탈출 아지트가 생겨서 바둥이는 더 이상 배회하다가 타인을 향해 짖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우리 집 근처, 그 문제의 등산로 앞에는 개집이 하나 있었다. 항상 묶여서 지내던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수컷이었다. 바둥이는 암컷이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개는 바둥이의 견생에서 마음을 준 유일한 개였던 것 같다. 그 개 이전에도 이후에도 바둥이는 다른 개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한동안은 바둥이가 탈출을 하면 여지없이 그 개집 앞에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개와 놀고 있었다. 그런데 바둥이의 마음에는 그 개가 로미오였겠으나... 우리에게 그 개는 접종은 다 마친 것인지 진드기나 이가 있지는 않을지 의심될 정도로 관리가 잘 안 된, 마음이 쓰이지만 바둥이 친구로는 썩 내키지 않는 녀석이었다. (지금이야 동물학대로 신고를 해보거나 할 생각을 하겠지만 그때는 20년 전이었다.)


엄마는 어느 날 바둥이를 앞에 앉혀놓고 드라마에 나오는 못된 어른 대사를 흉내 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걔는 안 된다!!!”

나와 동생은 푸하하 웃었고, 바둥이는 자신에게 일어날 비극(?)을 알지 못한 채 고개만 갸웃했다.


단지 그 개 때문이 아니라 바둥이에게도, 바둥이를 만날 다른 존재에게도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탈출을 막아야 했다. 다행히 인간인 우리가 바둥이보다는 조금 더 좋은 전략을 짤 줄 알았다. 발전한 형태의 탈출 막기는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어설프지만 다음과 같았다.

문을 열 때는 항상 긴장을 하고 심호흡을 했다. 도어록을 누르고, 걸쇠가 덜그럭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최대한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을 조금만 열고선 다리를 종종거리고 동시에 팔을 안으로 훠이 훠이 저으며 재빨리 전진하여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렇게 바둥이의 탈출 시도가 가로막히더라도 바둥이는 우리의 얼굴을 보면 반가워서 탈출 욕구를 바로 잊는 듯했다. 대신 그 기세로 자신을 만져달라고 달려들었다. 반바지나 치마를 입은 날이면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다. 맨다리에는 상처가 나고 스타킹은 다 찢어지기 일쑤였다. 아니 왜 안전문을 생각하지 못한 거지. 지식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그 뒤에도 바둥이의 탈출 시도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고, 성공한 날들도 가끔 있었지만, 정말 다행히 돌아오지 못한 날은 한 번도 없었다. 진짜 위험했던 날은 슬쩍 열려있던 문틈으로 바둥이가 아무도 모르게 나가버린 날이었다. 사건의 당사자는 엄마였다. 집안일을 하다가 어, 문이 왜 열려있지? 하고 닫고 보니, 바둥이가 없었다고 했다. 얼마나 정신이 아득해졌을까. 애들한테는 뭐라고 하지. 전단지를 돌려야 하나. 짧은 순간 별 생각을 다 했겠지. 일단 주변을 둘러봐야지 하고 대문을 연 순간, 바둥이가 거기 있었단다. 분명 발은 꼬질해졌지만, 아무데도 안 다녀온 것 같은 얼굴로.

집 최고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