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인생의 서막

힘내라 힘 우리 애기들

by 오늘



첫 재활의학과 외래는 아이들 생후 두 달이 되기 전이었다. 재재 하나만 데리고 갔었다. 나나는 그때당시엔 아직 입원 중이어서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신생아 중환자실에 가셔서 나나의 상태를 보았다고 했다. 재재는 시각반응이 느리고 청력반응이 의심스럽지만 아직 어려서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나나는 다운증후군 아기 치고는 짱짱한 편인 것 같다고 했다. 떠올려보면 그날이 재활의학과 진료를 다니며 가장 희망적인 얘기만 들은 날이었다.


나나가 퇴원하고 생후 3개월쯤 두 번째 진료를 갔을 때부터 본격적인 문제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재재는 청각반응이 확실히 좀 늦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발목과 다리에서 강직이 느껴진다고 했다. 강직이 있다는 말은 근육이 정상적이지 않을 정도로 뻣뻣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나는 근긴장도가 낮은 것이 확연히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운증후군 환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저긴장'이라는 명칭으로 많이 부른다. 힘이 없고 과도하게 유연한 근육) 다행히 재재는 청력 정밀검사 결과 큰 이상이 없었고 청각 반응도 좋아지다 못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졌다. 그러나 근긴장도도 점점 더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뻗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본인도 괴로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나는 시간이 지나도 종이인형처럼 흐물흐물 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나를 대할 때는 남편도 나도 엄마도 한없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놈의 근긴장도. 한동안은 그 단어를 듣기만 해도 신경질이 났다.


재활의학과 교수님은 이제 치료를 통해 개입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는 의견을 주셨다.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은 집에서 40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해서 재활치료를 매주 다니기엔 어려움이 클 것 같았다. 그래서 집 근처의 대학병원과 재활병원에 재활치료 대기를 걸기 위해 진료 예약을 잡았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내가 제일 에너지를 들였던 일은 상념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장애아 육아의 시작이구나. 내가 재활치료 라이딩을 시작하는구나. 맘만 먹으면 수억은 거뜬히 쓴다던 재활치료의 세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그런데 진료를 보면서 댕~ 귓전에 정신차리라는 종소리가 울렸다.


문제는 대기가 너무 길다는 거였다. 낭만적으로 우울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에 정신 차리고 대기를 걸었어야 했다. 아니 왜 재활의학과 교수님은 처음부터 이 얘기를 안 해주신거지. 소아재활치료를 운영하는 병원 진료과의 공급에 비해 치료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수요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그나마 대학병원에서는 어린 아기들일수록 재활치료 개입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이유로 대기 우선순위에 배정받아서 3개월 정도 대기할 예정이었고, 그런 우선순위를 정해놓지 않은 일반 재활병원에서는 무려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사설 센터라도 알아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발달장애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충격을 받아들여 가면서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경쟁사회에서 벗어나서 느긋하게 편안하게 키우는 게 또 나름의 행복이 될 거야 애써 생각했었는데 개뿔. 대한민국은 어디서나 누구나 어떤 경우에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재활의 세계에서도 보호자의 정보력과 발 빠름이 아이들의 치료를 좌우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알게 된 재활의 세계를 설명하자면, 우선 돌 이전의 발달이 느린 아기들은 물리(운동) 치료와 작업치료를 받게 된다. 기능이 조금 생기게 되면 감각통합치료(여러 감각을 동시에 처리하도록 도와주는), 미술치료, 놀이치료 등을 필요에 따라 추천받기도 하고, 두 돌이 지나면 필요한 경우 언어치료를 받게 된다. 이 외에도 근육 기능을 활성화하도록 도와주는 보이타치료, 보바스치료, 전기 자극을 근육에 전달하는 전기 치료, 보톡스 등의 약물 보조 치료 등등 선택가능한 조합은 너무나 무궁무진하다. 이 중 대학병원이나 국가 지정 재활병원은 치료비가 아주 저렴한 쪽에 속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많은 보호자들은 사설 센터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설 센터 치료비는 시간당 일반적으로 70000~80000원 정도다. 재활치료로 수 억을 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나는 우선 대학병원 치료 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나는 그 당시까지 아직 목에 힘도 별로 없어서 집에서 터미타임을 해 주는 것도 잠깐만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 미룬 것이기도 했고, 사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느려도 할 것은 다 한다는 말이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해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강직이 있는 재재는 치료를 통한 개입이 시급하다고 했다. 다행히 방앗간처럼 들르던 인터넷 장애 보호자 카페에서 방문 재활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됐다. 과외 같은 개념이라 비용은 비싸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닐 필요 없이 치료사가 집에 와서 재활을 도와준다는 점이 육아 피로도가 최고조였던 나에게는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망설일 것 없이 치료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잡았고, 다행히 친절한 태도와 믿음직한 경력의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재재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보기에는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는데 재재는 치료를 할 때마다 집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쓰기 힘든 근육을 쓰게 하고 굳어진 근육을 풀어주려 하니 아기가 짜증이 나고 불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우는 아이를 달래가면서 하느라 거의 치료를 못 하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에는 치료가 끝나고 남은 울음을 삭이는 재재를 품에 안고 아이도 나도 불쌍해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또 어떤 날에는 왜 이런 걸 해야 하나... 하며 안타까워하는 엄마를 달래려 재활의 중요성을 설명하다가 내 마음도 다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재재가 집에서 하는 치료에 익숙해질 즈음 생각보다 금방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도 연락이 왔다. 우선 자리가 난 작업치료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나나도 재활치료의 세계로 합류하게 됐다. 대학병원에서, 재재는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더 더 더 강성울음을 울어댔다. 그리고 나나는, 치료는 받는 건지 마는 건지 치료사 선생님에게 눈웃음을 치고 애교를 부리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의 애교가 통하지 않자 병원이 떠나가라 사이렌 울음을 울렸다. 치료시간은 30분씩 연달아 있었고 치료사 선생님과 함께 재재를 달래다 나나에게 황당해하다 보면 금세 한 시간이 지났다. 그 뒤에는 늘 엄마가 치료가 끝난 아이들의 밥을 먹이거나 달래거나 재우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며 함께 하셨다. 두 달쯤 뒤에는 물리치료도 자리가 나서 일주일에 두 번씩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다. 재재는 방문수업 두 번, 대학병원 치료 두 번, 해서 일주일에 네 번 재활치료를 받게 된 셈이었다. 재활은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되어갔다.


우리가 가는 대학병원 소아 재활 치료실은 성인 재활 치료실과 같은 공간에 있다. 그래서 재활치료를 기다리다 보면 아이들과 그 보호자들과도 만나게 되지만 성인들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된다. 재활이 필요한 성인들 중엔 노인들이 많고, 노인들은 발달장애나 소아 재활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재활치료를 갈 때마다 나와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 또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있게 됨으로써 묘한 상황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노인분들은 아기들을 보면 그저 반가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너무나 다정하고도 무례하게 아이의 개월수, 발달상황, 병원에 다니는 이유를 묻는다. 나도 이런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아기 몇 개월이에요?' '아기 기어 다녀요?' '어디가 아파요?' 하는 질문들이 이렇게 누군가의 가슴에 가시같이 파고들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당황하거나 안절부절못하거나 자리를 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대충 대답하거나 웃는다. 의도 없는 공격에 대해 최대한 시야를 흐려 상처를 받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럭저럭 잘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과 그 보호자들에게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애틋한 맘이 생긴다. 눈인사만 하는 경우도 있고 가끔 대화 몇 마디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의 모습도 불편함의 정도도 다양하지만 모두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다른 보호자들도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쌍둥이가 모두 치료를 다니는 경우는 드물 텐데 아무도 먼저 말하기 전에는 묻지 않는다. 그저 재재와 나나를 보고 참 예쁘다고 말해 준다. 재활치료 대기실은 그래서 나에게 불편하기도 편안하기도 한 곳이다.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재재와 나나는 좋은 치료사 선생님들만 만났다. 치료사 선생님들은 아기들 뿐 아니라 엄마 멘탈도 치료한다. 그들은 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우리 애들의 문제를 그 누구보다 정확히 알지만, 또 그런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동시에 그 누구보다 우리 애들을 그저 하나의 고유한 아기로 대하는 느낌이다. 그들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점이 아이들의 보호자에게는 너무나 큰 위안이 된다. 재재의 근긴장도가 아주 조금 낮아진 것도 그들은 나만큼이나 민감하게 알아채고 대견해한다. 나나가 코딱지만큼 배에 힘이 더 생기면 "아이고 우리 나나 대단해!!" 하며 칭찬해 준다.


이제 우리가 재활의 세계로 들어온 지 8개월이 되어간다. 재활 치료의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재재는 여전히 강직이 있고 뒤집기도 못 한다. 나나는 뒤집고, 되집고, 혼자 앉고, 가뭄에 콩 나듯 배밀이를 하기 시작했다. 재활의 효과를 의심한다기보단 재재의 뇌 문제로 인한 기능의 한계가 생각보단 크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도 무언가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이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재재가 어느 선에서 더 이상 발달이 되지 않을 것을 확신하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정도의 치료도 어차피 이렇게 될 거 괜히 했다 하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 시간에 애를 쉬게나 해 줄걸 하면서. 아니면 나중에 비슷한 문제를 안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아이를 보고는 재활을 더 할 걸 후회할 수도 있다. 어떤 사설 센터에서는 이런 부모의 마음을 이용해서 필요 이상의 치료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치료의 가짓수가 늘어나게 되면 또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설 것 같다. 수많은 옵션 중에 결국 내 선택대로 아이들의 삶이 결정되는 건 너무 무섭다. 그래서 곧 다가올, 옵션이 늘어나는 순간이 무섭다. 일단 나는 계속 갈팡질팡하겠지만 틈나는 대로, 재재와 나나가 이 아이들만의 길로 나름 잘 자라날 거라고 계속 열심히 믿기로 했다. 그리고 또 지금 하고 있는 것들과 앞으로 할 것들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의사들이 입을 모아 가망이 없다는 아이를 걷게 만들었다거나 하는 재활 세계의 신화 같은 엄마가 되려면 내가 가랑이가 찢어져 죽을 것이다. 나는 내 에너지가 오랫동안 고갈되지 않을 선에서 이 아이들의 그릇만큼만 혹은 그보다는 조금만 더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세세한 내용이야 다르지만 이런 류의 고민은 모든 부모에게 해당될 것 같다. 다들 어떻게 이 무게를 이겨내고 사는 거지.)


다음 달부터는 나나를 위해 사설 센터를 찾아 감각통합치료를 시작할까 싶다. 재재의 방문치료나 대학병원 재활치료가 없는 날로 채우면 이제 나에게는 재활이 없는 평일이 없다. 하루에 몇 시간을 라이딩하는 엄마들도 있는데, 괜히 쉬는 날이 없는 것 같아 숨이 차는 기분이다. 뭐, 또 시작하면 별 것 아닌 일상이 될 거다. 지금은 문화센터에 간다고 생각하고 다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피아노나 태권도 학원에 보낸다고 생각하고 다니려나. 또 시간이 지나면 영어 학원에 보낸다고 생각하고 다녀야 하나. 아닌가 그때쯤에는 어떤 이유로든 재활을 그만두게 되려나. 일단 향후 10년 정도는 아이들의 재활 치료가 내 일상이 될 것 같다.


재재와 나나는 이제 제법 적응을 했다. 여전히 많이 우는 날도 있지만 한 번도 안 울고 치료를 마치는 날도 있다. 별수 없이 애들도 재활을 자신들의 일상으로 받아들여 가는 것 같다. 진짜로 나중에 애들이 커서 나름의 자기 생각을 갖게 됐을 때, 치료실에 가는 것이 힘들고 싫을 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일상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다. 딱 그 정도로, 재재와 나나가 힘을 냈으면. 그리고 나도 딱 그 정도로 무리하지 않고 잘 지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