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일 만의 퇴원

드디어 집에 온 우리 딸

by 오늘


2킬로 남짓이었던 재재를 집에 데려와 5킬로까지 키우면서 남편과 티격태격하고, 재재를 안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여기저기 외래를 다니고 하는 동안 나나는 계속,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었다. 우리 부부는 재재의 외래가 겹치지 않는 한 함께 또는 혼자서 매주 월 수 금 10시에 맞춰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로 나나를 보러 갔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의 나나는 보기 힘들 정도로 작고 빨갰었다. 각종 문제를 해결하느라 투여되는 약 때문인지 어느 며칠 동안은 그 작은 몸이 퉁퉁 부어있기도 했다. 붓기에 눌린 얼굴은 안쓰러웠다. 사실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 입 밖으로 내밀고 있는 나나의 혀, 한쪽 귀퉁이가 접혀있는 귀 등 다운증후군의 특징을 확인하고 그때마다 절망하기를 반복했다. 조리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재를 조리원에 데려와서 함께 보냈던 2주 정도는 재재와 모자동실을 하는 시간이 면회시간과 겹쳐 남편이 혼자 면회를 다녔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이 열심히 찍어온 사진 속에서 나나는 다행히 하루가 다르게 살결이 하얘지고 점점 더 건강해 보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시에 다운증후군의 특징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고 있었다. 눌린 듯 납작한 안면과 코, 계속해서 벌어져 있는 입. 올라간듯한 눈꼬리와 눈 안쪽 덧살. 나나의 얼굴 전체를 보고 싶은데 자꾸 이런 것들만 확대한 듯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조리원에서 나와 드디어 오랜만에 직접 나나 면회를 갈 수 있게 되었던 날, 산후관리사님께 재재를 맡기고 기쁜 척 출발해 놓고는 막상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마음이 여러모로 싱숭생숭했다.


나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분명 못생겼겠지.

내 자식을 내가 평생 예쁘게 보지 못하면 어쩌지.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아이를 은근히 외면하면 어쩌지.

뭐 이런... 나나와, 그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속상함, 죄책감, 걱정.



그런데 면회를 가서 실제로 나나를 보자, 아니. 부기가 빠진 나나의 실물은 다행히(?) 생각보다는 귀여워 보였다. 남편은 사진을 참 못 찍는 사람이었고, 아기는 언제나 실물로 보는 것이 가장 예쁘단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날, 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팔을 이리저리 파닥거려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배가 고파 계속 찡찡거려서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전에 분유를 조금 먹도록 허락을 받고, 분유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먹는 속도는 무척 느렸는데 몸짓과 표정이 정말이지 '허겁지겁'이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읽고 나나가 엄마 걱정 말라며 자신의 매력을 선보이려 한 걸까.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생각도 든다.


그렇게 다행이면서 당연히도 엄마에게 호감어린 관심을 받기 시작한 나나는 그 뒤로 생후 2개월이 될 동안 2.5킬로 이상으로 살이 찌고, 상태가 좋아져 1인실에서 다인실로 옮겨 가고, 코에 다는 작은 호흡기와 모니터링을 위한 기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기계들을 떼어내고, 더 뽀얗고 부드러운 살결이 나타나고, 다양한 표정이 생기고, 배냇웃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결론적으로 무척이나 귀여워지고 말았다. 나는 나나에게 애정을 숨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재의 성장을 하루하루 보면서 정이 들어가는 만큼 한편으로는 나나가 커가는 모습을 하루하루 놓치게 되는 것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귀여워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살이 오르면서도 나나는 코에 꽂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호흡기만은 끝내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심장 구멍의 크기가 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나의 심장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었고 각각 동맥관개존증과 심방중격결손이라고 불리는 것들이었다. 이중 동맥관개존증이 나나의 호흡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약물이나 시술과 같은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려 했지만 시도해 본 약은 들지 않았고, 교수님이 자세히 알아본 결과 나나의 상황에서 시술은 불가능했다. 결국 해가 바뀌고 이틀이 지난날 나나는 수술을 하게 됐다.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동맥관개존증 수술은 다운증후군이 아니더라도 아기들에게서 보이는, 심장 질환 중에서는 꽤 흔한 질환이라고 했고 수술도 간단한 편이라고 했다. 지금 입원해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자리를 옮기지 않고 수술을 하고, 그동안과 똑같은 보살핌을 받으며 회복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수술을 하면 이제 정말로 나나가 이 기약 없는 병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수술이 다가오자 마음이 쪼들려 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재재가 예민해서 엄마께만 맡기고 둘이 병원에 가기가 죄송하니 수술날 남편에게 혼자 보호자로 병원에 가 달라 부탁했다. 사실은 예상할 수 있겠지만, 3킬로 남짓한 몸으로 수술을 끝낸 내 딸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던 거다. 위기상황에서 빛나는 남편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고는 수술 당일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나나의 수술시간즈음 나에게 전화가 왔다. 보호자 동의를 해야 하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는단다. 알고 보니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에 뛰어갔던 거였다. 남편도 당연히 초조했던 것이다.



다행히 수술을 마친 나나의 모습은 사진으로는 꽤 평온해 보였다. 남편도 자고 있는 모습만 보고 왔지만 편안해 보였다고만 했다. 수술을 하느라 호흡을 위한 기도삽관이 되어있었는데, 너무 편안해 보여서 그랬나 그 당시에는 순간 스스로 호흡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꼭 조여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어지고 우리 가족은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나나의 퇴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직 신생아만큼 작은 나나를 위해 젖꼭지가 좁은 젖병을 주문하고, 1단계 기저귀를 새로 주문하고(재재는 2단계를 쓰고 있었다), 아기 옷과 침대를 다시 정리했다.


그런데 며칠 뒤 혼자 면회를 갔을 때, 예상치 못하게 나나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 보였다. 기도삽관을 뺀 뒤에야 나나의 목구멍이 생각보다 더 작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꽉 끼워져 있던 기구를 뺄 때에도 나나는 무척 힘들어했지만 그 후로도 부어버린 기도와 목 때문에 여전히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숨소리에서 쇳소리가 났다. 숨쉬기도 힘든 아기가 헐떡거리면서 계속 울어서 더 숨쉬기 힘들어했다. "나나야 울면 더 힘들어!" 소용도 없는 말을 아이의 귀에 대고 계속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나를 안아줄 수조차 없었다. 몸에 장치들을 달고 있어서 내가 나나를 직접 들어 올리면 안 됐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교수님이 나나를 안아주었지만 나나는 계속 울고 힘들어했다. 교수님은 방법을 바꿔 쪽쪽이를 물리고 아이를 도닥였다. 허락을 받고 나도 수술부위를 피해 아이의 배를 가만가만 두드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나나의 울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다시 울려는 듯 얼굴을 찡그리다 풀고 찡그리다 풀고를 반복했지만 어느새 쇳소리를 내며 얕은 잠에 들었다. 교수님은 한숨 섞인 웃음을 보이며 역시 엄마가 최고라고 했다. 나는 나나를 안을 줄도 모르는데, 많아야 일주일에 세 시간 보는 게 다인데, 뭐가 엄마가 최고야 나나는 아직 엄마가 누군지도 모를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비죽이고 올라와 금세 민망하게도 두 볼에 눈물이 한 줄기씩 흘러내렸다. 그 후로 나나가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다행히 그 후로 나나는 점점 빠르게 회복해서 다시 삽관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면회를 갔던 어느 날에 나나는, 호흡기를 떼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옷을 입고 있었다! 나나의 기저귀만 찬 모습에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서 옷을 입은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동안 나나가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것도 몰랐었다. 호흡기를 떼고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는 나나는 꽤나 평범한 아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덧 콩깍지가 씔 대로 씌인 내 눈에는 생각보다 더, 너무 예뻤다. 나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


나나가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어

그래? 나는 처음부터 예쁜 거 알았는데

처음에는 빨갛고 부어있고 기계 달고 있어서 얼굴도 잘 안보였잖어

그래도 나는 예쁜 거 알았어. 내가 그랬잖아.


남편은 왠지 모르게 우월감에 찬 눈빛으로 나에게 그것도 몰랐냐는 투로 말했다. 남편의 으스대는 말투가 하나도 아니꼽지 않았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태어나 82일째이자 수술하고 2주가 되던 날 나나는 퇴원을 했다. 우리는 재재가 퇴원을 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주의사항을 듣고, 이런저런 약을 잔뜩 받고서야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나가 카시트에 정성스레 싸여 나오자 남편의 로봇 팔이 다시 활약을 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 드디어 나나는 재재를 다시 만나고, 할머니도 만났다. 엄마에게 나나를 데려갔더니, 엄마는 무표정과 웃음기어린 얼굴의 중간 표정을 하고,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보았다. 왠지 나와 비슷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나 생각보다 예쁘죠?" 하니까 오랜 생각에서 깨어난 것처럼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응 그러게" 했다. 엄마는 아주 빠르게 나나와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진짜 쌍둥이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나는 재재와 아주 다른 아기였다. 모유든 분유든 아주 잘 먹었다. 하지만 먹는 속도는 엄청 오래 걸려서 우리는 나나 밥을 먹이다 졸기 일쑤였다. 잠을 가만히 누워서 엄청나게 잘 잤다. 다만 오후 9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잠을 거의 안 자고 깨어있었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쉬지 않고 옹알이를 하거나 버둥거렸다. 우리는 빠르게 재재와 나나를 함께 재울 수 없음을 깨달았고, 번갈아 당번을 정해서 밤을 보냈다. 그리고 나나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로 순했다. 바깥에서 소리만 들으면 아주 많이 우는 애 하나만 키우는 줄 알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신생아중환자실에 오래 있었기 때문일지 다운증후군 아기들의 특성일지 그냥 나나의 성향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나 덕분에 살았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쉬지 않고 파닥거리고, 재재가 옆에 있을 때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고개를 돌려 재재의 머리통을 맛봤다. (당연히 재재는 울었다.) 그러다가 지치면, 혼자 잤다. 혼자 자다니, 볼 때마다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우리는 나나가 잠들면 그 자리에 천기저귀를 이불로 덮어주었다가 깨어나면 천기저귀를 치워주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나나는 밥을 먹고 기저귀가 갈아지고 난 다음에 알아서 파닥거리며 놀다가 또, 혼자 잤다.


그렇다고 나나가 마냥 만만한 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나나를 데려오고 삼일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아직 수술한 지 오래되지가 않아서 일주일에 두 번은 수술 부위 드레싱을 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날은 나나가 집에 오고 처음 드레싱을 하는 날이었다. 옷을 벗기고 탈지면에 소독약을 적셔서 나나의 수술 부위에 갖다 대는 순간, 나나의 울음소리가 사이렌처럼 온 집안에 퍼졌다. 나나의 울음소리는 정말 진짜 너무 커서 우리는 일단 너무 놀라고, 그 다음에서야 나나를 안쓰러워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재재의 악지르는 소리에 귀가 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재재는 제대로 붙으면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전에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이 나나가 울음소리로 신생아 중환자실 기강을 잡고 있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나는 그러냐고 웃으면서 속으로는 내 걱정을 덜어주려고 간호사 선생님이 과장하는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나나는, 진짜 기강을 잡았을 거다. 그리고 그 기세로 점점 우리 집 기강을 잡기 시작했다.


우리는 센척하는 예민보이와 진짜 센 천사소녀와의 삶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사실은 아무리 나나가 순하다 해도 쌍둥이 육아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나나의 병원 외래 러시도 시작되었다. 그래도, 나는 가끔씩 둘이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온전해진 느낌이 들었고, 그때마다 나름대로 행복했다.





<덧붙이는 이야기 - NICU의 천사들>


나나가 퇴원을 하고 소아과 외래로 오랜만에 교수님을 만났을 때 교수님은 진심으로 나나를 반가워하면서 진료를 봐주신 후에 신생아중환자실에 들러 인사하면 어떠냐고 제안해 주셨다. 업무 공간인데 그래도 될까 고민하자, 모두가 정말 좋아할 거라고 했다. 마침 접종을 하고 반응을 지켜봐야 해서 시간이 떴다. 오늘 마침 나나를 예쁘게 입히기도 했다는 생각도 들고, 퇴원날 인사하기는 했지만 아쉬웠다 싶기도 해서 신생아 중환자실로 향했다.


가면서 문득 걱정이 됐다. 나나가 오래 입원해 있긴 했지만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나를 알까? 나나 인사하러 왔다고 했는데 그게 누구죠? 하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면 어쩌지.


그러나 벨을 누르고, 용건이 어떻게 되세요? 하는 목소리에 아... 나나 인사드리러 왔어요. 하고 말했더니, 나의 걱정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꺄아아아~ 소리가 인터폰 안쪽에서 들렸다. 새로운 신생아가 들어와 바쁜 시간이어서 두 분만 나와 나나와 인사를 나누셨는데, 이리저리 안아보고 나나를 살펴보시는 모습에서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졌다. 한동안 나나와 놀아주시다가 한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보고 문득 말씀하셨다.


"어머님. 이렇게 뵙고 나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나나가 수술을 하고 기도삽관을 빼는 날에요. 기도삽관한 거 뺄 때 아기들이 무척 힘들어하거든요. 나나도 힘들어할 거라 모두가 걱정하고, 정말로 그날 여기에 있던 모든 근무자가 달려들어서 나나를 달래줬어요. 11명이요. 저도 그때 있었는데, 그 장면 안에 있는 그 순간에 나나가 너무나 귀해 보이더라구요. 나나가 그렇게 소중한 아기랍니다."


미처 마음의 단도리를 할 틈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나나에게 몸도 마음도 멀리 있었던 많은 순간에 그 자리를 이렇게나 많은 사랑이 대신하고 있었구나. 나는 나나를 정말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만 하는 빚을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의 나나 존재를 부정하고 미워했던 날들이 떠올라 한없이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런 시간 동안 나나가 그런 내가 아닌 이런 사랑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처음에 아이들의 문제를 알고 힘들었을 때에는 그전에도 충분히 고백했지만, 아이들이 예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픈 곳이 생기거나 다른 문제가 생길 때마다 너무 힘들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마음에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다짐을 한 적도 있었다. 데리고 와서 키우는 재재에게도 내심 그랬는데 멀리 있는 나나는 사실 더 정이 부족했다. 나나가 천천히 퇴원했으면,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나 담당 교수님은 용건이 있어 전화할 때마다 "어머니~ 나나가 점점 더 귀여워지고 있어요." "나나가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 샘들에게 너무 인기가 많아요." 하는 말들을 하셨다. 면회에 갈 때면 담당 간호사이신듯한 선생님이 곁에 오셔서는 "어머니~ 나나는 쪽쪽이 물고 눈뜨고 이렇게 쳐다볼 때가 제일 귀여워요. 이거 보세요!! 악 귀여워~" 하며 나보다 훨씬 높은 텐션으로 나나를 예뻐해 주셨다.


물론 데려와 키우다 보니, 그 말들은 나를 위로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나나의 얼굴에서 다운증후군의 특징을 문득문득 확인하게 되고 그때의 기분이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참 인간 하바리인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에도 나나는 언제나, 너무나 사랑스럽다. 데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느 날부턴가 눈만 마주치면 눈을 찡그려서 뭘 하는 걸까 어디가 불편한 걸까 했는데 눈웃음을 짓는 거였다. 지금 나나의 눈웃음치기는 주특기가 되어서 재활 치료사 선생님들도, 나나를 만나는 모든 의사 선생님들도, 물론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도 나나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혼자 잘 놀다가 꽈당 넘어지면 입을 비죽거리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는데도 아픈 걸 다 잊은 것처럼 웃어 보이기도 하고, 끝내 내가 봐주지 않으면 집이 떠나가라 울면서 온몸을 뻗대기도 한다. 나나는 알아서 자기 몫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세상 모든 아기들이 그렇지만 나나는 특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기이다.


다만 나나에게 무척 미안하고 부끄럽게도 이걸 처음 알아봐 준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 내 생기 없는 그 때의 눈빛을 읽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무래도 나나의 이 사랑스러움을 나에게 꼭 알려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 무렵 내가 나나 담당 교수님이나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은 의료진으로서는 사실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나나가 너무 귀여워요. 이 모습 너무 귀엽죠. 나나가 점점 더 귀여워지고 있어요. 나나가 놀아달라고 하는 것 같아요. 나나가 더 먹고 싶어 해요. 자면서 웃는 거 진짜 귀여운데 보셨어요?....


떠올려 보니 그들은 그런 일에 진심인 마음만큼이나 몹시 소질이 있었다. 그 무렵 아이들에 대해 가장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들의 인도에 따라 나나를(그러면서 재재도) 점점 더 귀엽고 예쁘게 바라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기를 향해 한 번 생겨난 사랑스러운 마음은 그들이 계속해서 예쁘게 굴려주니 알아서 몸집을 두둑히 키워주었고, 덕분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나나가 받았던 사랑은 끊어지지 않고 집에서 엄마에게서도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덕에 지금 이렇게 알아서 사랑받을 줄 아는 아기로 자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나는 모성애를 배워서 갖게 된 것 같다. 그게 맞다면 적어도 절반 정도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배웠다.


이 글을 보실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담당 교수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